모든 것은 변한다. 변(變)의 기저에는 화(化)가 깔려 있다. 물질 변화를 원자나 분자 간 활동으로 표현하는 연구를 화학(化學)이라 부른다. 화학은 19세기 때 일본 학자가 고안한 말이다. 일본 학자는 당시 네덜란드어를 번역했다.
화학을 뜻하는 영어 낱말 케미스트리(chemistry)는 알케미(alchemi)에서 비롯됐다. 알케미는 연금술을 뜻한다. 연금술사는 납과 같은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꾸려 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연금술사는 화학을 모르는 사람이다. 화학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근대 과학으로 정립됐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학기업은 화학을 기반으로 연금술사의 일을 계승하고 있다. 재료물질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합성물질을 만들어 수익을 올린다.
얼마 전 글로벌 화학기업의 국내 연구개발(R&D) 센터에서 낯선 경험을 했다. 회사 소개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대피 요령을 들었다. 영화 시작 전에 출입구 동선을 설명하는 영화관과 비슷했다.
“위급 상황 발생 시 복도로 나가면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왼쪽으로 나가면 지상 출입구가 나오고, 오른쪽은 계단을 이용해 다른 층으로 가야 합니다. 건물을 빠져 나간 후에 최종으로 모이는 장소는 화면에 표시된 공터입니다.”
연구원의 설명은 길고 자세했다. 연구원은 “화학 설비는 한번 사고가 나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칠 수 있다”면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방문자에게 예외 없이 공지를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설립 100년을 훌쩍 넘긴 회사였다.
3M에서 만든 옥틸이소티아졸론(OIT) 함유 필터 문제가 최근 불거졌다.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세트 업체는 발 빠르게 필터 교체에 나섰다. 늑장 대응으로 피해를 키운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타산지석이 됐다.
화학기업은 화학 설비와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또 어떻게 해야 안전한 지도 터득하고 있다. 관건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 언제나 안전 매뉴얼을 실천하는 것이다. 연금술사와 같이 금을 만드는데 온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 화(化)가 화(禍)를 부를 수 있다.
이종준기자 1964wint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