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세계에서 전략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약자가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전력을 가지고도 강자를 넘어뜨리는 승리를 거두기도 하고 성과나 하늘이 무너지는 위기 상황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아 사태를 반전 시키는 드라마는 전략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전략 당사자 입장에서 재미없는 상황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비즈니스 전략은 성공하면 지속가능한 경쟁우위를 획득하면서 상당 기간 독점적 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해피엔딩은 갈수록 오래가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모바일 인터넷 인프라 위에서 뉴미디어와 혁신 기술들이 등장함에 따라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경쟁 판도가 산업구조 틀에서 벗어나 소비자 경험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시장 질서를 깨고 수시로 경쟁의 틀이 바뀔 수 있다.
20세기 후반에 주로 연출된 `재미있었던` 전략 이야기를 살펴보자. 본디 전략이란 선택과 집중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선택과 집중으로 재미를 보았던 전략 프레임은 위치선점(포지셔닝)이다. 속해 있는 산업 구조 속에서 매력적인 시장을 찾아 위치를 선점하고 방어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전략 이야기다.
1980년대부터 정립된 경쟁전략(Competitive Strategy) 이론은 연구개발, 구매, 생산, 영업, 인적자원 관리 등 차별적인 기업 활동들로 구성된 가치사슬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익 잠재력이 큰 위치(포지션)을 선점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속가능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위치선점 형태로는 비슷한 품질과 성능의 제품을 경쟁자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원가우위, 높은 가격임에도 소비자가 기꺼이 구매할 만큼 프리미엄 제품을 제공하는 제품 차별화 등이 있다. 우리 대기업은 수직계열화를 기반으로 글로벌 수준에서 가치사슬을 구축함으로써 우수한 품질로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위치선점으로 경쟁력을 유지했다.
두 번째 전략 프레임은 내부 능력과 핵심역량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 즉 기업 내부 자원과 역량을 축적하고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지속적 경쟁우위를 획득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남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자원과 역량을 꾸준히 구축함으로써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과거 일본기업이 자동차와 전자산업 등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줘 주목받은 바로 그 전략 이야기다. 오랜 기간 광적인 집착으로 그 기업만이 가지는 고유한 기술과 능력을 축적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이 쉽게 모방하기 힘들게 만드는 전략이다. 우리 기업도 1990년대 정보화 흐름에 맞서 `더 빠르게` 학습함으로써 `더 강한` 기술역량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전략 프레임은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오랜 기간 막대한 투자를 해 원가우위나 제품 차별화로 진입장벽을 쌓아도 전혀 다른 산업영역에 있던 작은 기업이 손쉽게 침입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경계성(Boundaryless)이 시장을 지배한다. 샤오미 같은 신생 SW 업체가 삼성전자 스마트폰 글로벌 공급사슬 망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급속한 기술융합 추세는 세계 최고수준 혁신 능력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키는 역량 파괴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 코닥 등 많은 기업이 세계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한 순간에 쇠락해 버렸다.
이제는 시대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전략 프레임이 필요하다. 선발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 비즈니스를 해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내야한다. 따라서 `더 싸게. 더 우수하게`에 의한 포지셔닝이나, `더 빠르게. 더 강하게`를 통한 역량구축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보다는 `기회 추구` 전략 프레임을 따라야 한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시장을 찾아내 거기서 남보다 먼저 기회를 획득하는 것이 진입장벽을 쌓고 핵심역량을 보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회추구 전략 프레임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극한적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실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프레임에서는 명확한 정체성과 단순한 규칙에 의존한 네거티브 의사결정 시스템, 그리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핵심 프로세스가 경쟁력 원천이 된다.
그러나 기회추구 전략 프레임에 따라 선발주자로 성공했다하더라도 과거처럼 한 번 창출해 놓은 시장 독점적 지위와 진입장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재미를 보기가 쉽지 않다. 계속되는 기술 변화와 후발주자 진입으로 일시적 경쟁우위 만을 향유하기가 십상이다. 따라서 기회추구 전략 프레임은 일시적 경쟁우위를 전제로 해야 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즉 일시적 경쟁우위를 반복적으로 누리기 위해 `치고 빠지는(Hit&Run)` 식의 역동적 선발주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고단하고 `재미없는` 전략 이야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