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드는 방법

지난 2008년 일본 SF 대상을 수상한 `전뇌코일`이라는 애니메이션에는 증강현실(AR) 안경을 써야만 보이는 강아지를 기르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AR 기술이 우리 일상 속으로 자연스레 녹아들어간 미래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최근 이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돼 전 세계 화제로 떠오른 `포켓몬 고(Pokemon GO)` 게임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가상의 몬스터를 잡아서 훈련시키고 기를 수 있도록 해 준다. `전뇌코일`에서 그린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전문가기고]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드는 방법

포켓몬 고는 구글 사내벤처로 출발한 회사 나이앤틱(Niantic)과 닌텐도가 설립한 포켓몬컴퍼니가 협력해 만든 스마트폰용 AR 게임이다. 7월 7일 첫 출시 이후 주요 국가에서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최상위권을 석권하는 등 선풍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고 있다.

포켓몬 고 열풍의 한편에서는 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제발 이번만은 그러지 말라는 말도 나온다. 이 말은 우리도 포켓몬 고와 같이 전 세계의 인기를 끌 만한 제품을 만들되 남 따라 하기는 하지 말자는 충고일 것이다. 포켓몬 고의 성공 요인은 배우고 내용은 우리 콘텐츠로 만들면 될 일이다. 포켓몬 고의 성공 요인이 될 수 있을 만한 특징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포켓몬 고의 성공 요소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은 `포켓몬스터`라는 콘텐츠다. 하지만 콘텐츠만이 성공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포켓몬 고는 AR 기술을 스토리에 굉장히 잘 접목한 사례다. 포켓몬스터는 몬스터 볼(Monster Ball)이라는 휴대용 케이스로 몬스터를 포획한 뒤 데리고 다니면서 키우고 챔피언에 도전하는 몬스터 트레이너(Trainer)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현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가상의 영상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AR 기술에 아주 적합했다. 포켓몬 고에서는 몬스터를 찾고 잡는 과정을 보물찾기처럼 하나의 보상으로 만들었다.

현실 공간에 가상의 체육관이라는 것을 만들어 점령하고 이를 지켜 내는 과정에서 게임 이용자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임 요소를 적절히 배치했다. 일정 레벨 이상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과 팀을 이뤄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 소셜미디어 요소를 넣어 이동해야 하는 AR 기술의 단점을 상쇄하고 있다. 오히려 이 특징을 20년 전에 출시된 포켓몬 게임과 다른 새로운 경험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 영화 `아바타`에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3D 기술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사용해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포켓몬 고도 기술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콘텐츠와 화학 결합을 이뤄낸 결과 초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형 포켓몬 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 개발과 함께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 이용 가능한 기술을 잘 이해하고 콘텐츠에 잘 융합시켜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뇌코일`에서는 AR로 나타나는 대상이 단순한 컴퓨터 영상이나 정보를 넘어 보이지 않는 영혼이나 추억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콘텐츠 개발자는 이런 점들을 잘 인식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안상철 KIST 로봇미디어연구소 영상미디어연구단장, asc@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