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과학의 향기]컴퓨터그래픽만으로도 영화가 된다?!

[KISTI 과학의 향기]컴퓨터그래픽만으로도 영화가 된다?!

영화 `부산행`이 연일 흥행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올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극중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KTX 열차는 좀비로 인해 대전역에서 정차하지만 여기저기에서 나타난 다른 좀비 공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KISTI 과학의 향기]컴퓨터그래픽만으로도 영화가 된다?!

이 장면에서 플랫폼과 에스컬레이터, 출입문 등은 모두 실제 대전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기차역에서 촬영한 장면을 컴퓨터그래픽(CG) 작업으로 처리한 것이다. `부산행`의 CG는 전체 1800컷 중 600컷으로서 영화 3분의 1에 달한다. 이를 위해 약 100명의 VFX 아티스트를 투입해 CG 작업을 했다는 후문이다.

VFX(Visual FX)는 말 그대로 특수 시각 효과다. 영화 `벤허`처럼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VFX는 들어갔다. 정교한 솜씨로 만든 미니어처 등의 특수촬영과 결합해 마치 실물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낸 것이다.

그러다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 컴퓨터 처리로 제작된 모든 화상정보와 그 기술을 통틀어 일컫는 시각예술의 한 분야인 CG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즉, VFX는 CG를 포함하는 상위 개념인 셈이다.

거의 모든 발명품이 그렇듯 CG 역시 전쟁과 관련된 방위산업 분야가 기술 개발 태동을 주도했다. `컴퓨터그래픽 역사(이인재 저)`를 보면 컴퓨터 과학으로 최초 그래픽 이미지를 만든 사람은 1950년 미국의 벤 라포스키였다.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그는 전류 변화를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전자 광선 추상적 도형이 임의로 만들어지는 작품을 발표했다.

다음해 MIT에서 벡터그래픽스 화상처리 기술을 개발하자 북미 지역 방공 목적으로 항공관제센터 및 지상 레이더망의 표준 개발을 위한 연구소가 설립됐다. 이후 이 연구소는 미국 공군의 반자동 방공 체계인 `세이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CG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1960년 미국 보잉 연구원인 월리엄 페터였다. 그는 컴퓨터와 연결된 펜으로 설계도면과 그래프를 그리고 출력하는 장치인 플로터를 이용해 비행기 조종실을 묘사한 다음 이를 `컴퓨터그래픽스`라고 지칭했다.

VFX에 CG를 활용한 최초의 장편영화는 1968년에 개봉한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1977년에 개봉한 `스타워즈`가 성공하자 자신의 영화사에 CG 담당 부서를 설립했다. 이후 CG는 영화 제작 기본 요소로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9년에 개봉한 `아바타`는 환상적인 CG와 VFX로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킨 영화다. 이 영화는 제작비 2억3000만달러가 들어갔지만 매출액은 그 11배인 27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에 CG가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당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대비한 컬러 TV 방송 개시가 CG 도입 직접적 계기였던 것. 국내 영화에서 처음 CG를 사용한 것은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년)`이다. 하지만 영화 속 장면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오프닝 크레디트에 자막과 함께 배경 이미지 톤을 바꾸는 데만 사용됐다. 이후 1994년에 개봉한 `구미호`의 주인공이 구미호로 변하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CG가 사용됨으로써, CG를 사용한 첫 번째 한국 영화로 기록돼 있다.

[KISTI 과학의 향기]컴퓨터그래픽만으로도 영화가 된다?!

현재의 발달한 CG 기술로도 가장 표현하기 힘든 대상이 바로 물과 불, 그리고 동물의 털이다. 물을 예로 들면 컵에 따를 때와 거대한 파도가 도시를 덮칠 때, 물 한 방울이 떨어질 때 등 모습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정교한 CG로 구현하기 위해선 물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유체운동방정식으로 계산한 다음 디자이너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입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물리학과 유체역학, CG가 적용돼 자동으로 생성되고 표현될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동물의 털도 마찬가지다. 한때 동물 털을 CG로 표현하는 건 신의 영역으로 여길 만큼 어려웠다. 그런데 2012년 리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CG로 만든 호랑이 털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정교했다.

지난 6월 개봉한 `정글북`은 CG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진짜는 주인공 모글리와 그가 입고 있던 빨간 팬티뿐이었다. 정글 속 하늘과 물, 나무, 바위 등의 영화 속 배경을 비롯해 그 속을 뛰어다니는 호랑이, 늑대, 곰 등 70종에 달하는 동물 모두가 CG로 만들어진 가짜였다.

[KISTI 과학의 향기]컴퓨터그래픽만으로도 영화가 된다?!

CG를 많이 사용한 영화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글북에서는 CG로 만든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는 평을 얻었다. 동물 표정과 동작이 진짜 동물보다 더 리얼했던 것이다. 이 영화 CG 제작진이 동물 근육과 피부, 털을 구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적용한 덕분이다.

최근 들어 CG는 영화의 특수 영상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응용 분야로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각종 시뮬레이션과 CAD, 인쇄매체의 편집은 물론이고 의료 및 산업용의 화상 처리에 까지 이용된다.

문영래 조선대 의대 교수가 특허를 출원한 `가상 관절경 수술 시뮬레이션 장치`가 그 좋은 예다. 이 장치의 가장 큰 특징은 실물에 근접한 가상의 관절을 모니터 상에 만들어 어깨나 팔꿈치 등의 관절 수술을 의사가 미리 연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술 전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으로 획득한 영상자료를 활용해 광학적 특성에 따라 재편집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문의라고 해도 숙련도에 따라 관절경 시술 수준이나 시간 등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시뮬레이션 장치를 이용해 관련 검사 및 수술 연습을 하면 환자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시간과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게 된다.

글: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