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가 R&D 투자와 친연구자 환경

[기고]국가 R&D 투자와 친연구자 환경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R&D)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3%(2015년 기준, 18조9000억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가 R&D 투자가 크게 늘면서 지난 반세기에 걸친 정부의 R&D 투자 성과, 향후 역할, 방향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전자신문을 시작으로 여러 매체에서 국가 R&D 성과를 점검하고, 주요 핵심 연구 주체의 혁신 관련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연구 성과를 평가할 때 기초연구는 창의성 성과와 논문, 응용개발 연구는 논문보다 응용성 높은 특허나 기술 이전 등이 주요 잣대가 돼야 한다는 지적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연구 성과를 평가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의 하나는 연구자 전문성이 연구를 통해 얼마나 높아졌는지 여부다. 해당 연구자의 전문성 향상이야 말로 투자 연구 재원이 제대로 쓰였는지 판단하는 기본 척도라 생각한다.

사실 연구 결과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자가 연구 수행 과정에서 전문성을 높였다면 그 연구는 의미 있는 연구다. 반복된 연구 전문성 향상은 언젠가 훌륭한 성과를 가져오는 토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 지원과 연구 성과 평가에서 친연구자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연구 지원 측면에서는 연구비가 연구자의 전문성을 높이는데 방해가 될 만큼 너무 많아도 안 되고, 너무 적어서 연구비 수주 부담을 받아서도 안 된다.

현재 국가 R&D 예산은 정부의 기획성 사업이나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와 동떨어진 연구를 하고, 최소한의 연구비 확보를 위해 불필요한 연구를 하는 이유다. 연구 주제보다 연구비 확보 자체에 매몰된 연구는 연구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정부 정책성, 기획 프로그램 연구비의 일부라도 떼어 기본 연구비로 지원한다면 연구 투자 효과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연구 성과 평가 측면에서는 현재 연간 단위의 정량 평가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연 단위의 연구 평가는 평가만 잘 받기 위한 연구를 유도하고 도전성 강하거나 깊이 있는 연구를 방해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 연구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기본 연구비를 장기 차원에서 확보하고, 단기 및 정량 평가에 대한 부담이 덜어질 때 연구자의 전문성과 경쟁력은 향상될 것이다.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은 나카무라 슈지 연구원에게 장기간 친연구 환경을 제공했다. 나카무라 연구원은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했고,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평범한 기업이던 니치아화학공업은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국내 민간 기업이 보여 준 사례에서도 중장기 친연구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무려 15년 동안 900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투입해 지속형 당뇨 신약을 개발한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이 신약 하나로 신규 매출 4조8000억원, 기술 수출 8조원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신약 개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오랜 기간에 한 연구 분야에 집중하고, 연구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얻은 전문성 향상의 결과다.

학술 측면으로도 의미가 있고 산업계에도 도움이 되는 연구 성과를 거두려면 R&D 재원의 절대 액수도 중요하지만 R&D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장기 투자 효율성은 결국 연구원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친연구자 환경 조성과 관리에 달렸다. 현재의 연구지원 제도와 지원 형태, 연구 성과 평가 제도 및 방식에 대한 근본 검토와 개혁이 필요하다.

강석중 한국세라믹기술원장 sjkang@kic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