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 시장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세단이 주류를 이루던 미국 시장은 물론 전 세계가 SUV 열풍에 싸였다. 스포츠카·세단만을 고집하던 재규어, 마세라티 같은 업체들도 SUV 시장에 뛰어들었다. SUV 라인업이 약한 현대차도 SUV 라인업 강화를 위한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미국에서는 SUV가 픽업트럭까지 대체하면서 일부 업체들이 픽업트럭 생산 중단까지도 검토하고 있다.
SUV 영역도 무한 확장되고 있다. SUV를 오프로더로 떠올리는 것은 옛말이다. 도심형 SUV는 물론 친환경 SUV까지 나왔다. 최고급 세단을 방불케 하는 SUV부터 소형차와 경쟁하는 소형 SUV,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SUV 독주
세계 자동차 시장은 SUV만 독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을 포함해 세계 시장이 SUV가 홀로 성장하는 구조다. 경기 부진 속에 자동차 시장 자체가 침체되면서 SUV 성장만 돋보이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SUV가 지난 상반기에 전년 대비 44.9% 성장했다. SUV와 비슷한 범주에 있는 다목적차량(MPV)은 30.1% 늘었다. 세단 대부분의 세그먼트가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어 더욱 대비된다.
중국 로컬 업체들의 성장도 SUV 시장 성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로컬 업체들이 저렴한 SUV 모델을 내놓고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신흥 시장에서는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느는 등 생활 패턴 전반이 변화하는 데다 시야가 넓어 운전하기에도 편하고, 사고 발생 때도 차량 훼손이 덜하다는 등 장점이 부각되면서다. 중국 승용차 시장의 50%를 SUV 차량이 차지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중국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시장 역시 SUV가 강세다. 리먼브러더스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연비 높은 세단의 판매 비중은 51%에 달했다. 하지만 세단 비중은 이제 40%대 초반까지 떨어졌으며, SUV 비중은 2008년 대비 1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금융위기 이전의 유가 상승과 가계소득 감소로 인해 세단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연비가 다소 낮은 SUV 차량으로 수요가 몰린 것이다.
오프로드가 아닌 도심에 적합한 소형 SUV 종류도 늘면서 전체 SUV 판매량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 7월 미국 자동차 판매량에서 승용차는 전 차급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반면에 SUV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 조사업체 IHS 관계자는 “앞으로 유가가 갤런당 3달러 수준을 회복하더라도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선호 차종 변화, 업체들의 신규 모델 지속 출시로 미국 내 SUV와 CUV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UV 영역 불문…무한 확장
SUV 이름에 걸맞은 오프로더 SUV는 물론 도심형 SUV, 럭셔리 SUV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SUV가 쏟아지고 있다. 볼륨 모델은 물론 틈새를 겨냥한 모델까지 업체들이 시장 수요와 달라진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SUV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는 차량은 도심형으로 불리는 소형 SUV나 CUV다. 가격이 저렴하고 적재 공간도 넓다. SUV치고는 연비가 높은 편인 것도 강점이다.
SUV와 세단을 합쳐 놓은 듯한 크로스오버 차량도 인기다. 해치백이나 왜건처럼 적재 공간은 늘리면서 세단의 강점인 승차감도 놓치지 않는다. 게다가 SUV처럼 험로 주행도 가능, 미국이나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급차 브랜드는 물론 럭셔리 브랜드까지도 SUV 출시에 동참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같은 고급차 브랜드는 엔트리급부터 대형 SUV까지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벤틀리, 마세라티도 처음으로 SUV를 내놓으며 새로운 럭셔리 SUV 영역을 일궈 냈다. 벤틀리의 첫 SUV인 벤테이가는 성능 면에서 고급 SUV를 훨씬 뛰어넘는다. 6.0리터 트윈터보 W12 엔진을 탑재해 최고 출력 608마력(447㎾)과 최대 토크 91.8㎏·m(900Nm)으로 시속 100㎞까지 도달한 시간은 4.1초에 불과하다. SUV가 고속에서는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듯 최고 속도는 시속 301㎞에 이른다.
친환경 SUV 라인업도 늘고 있다. 특히 스택 때문에 차체가 높은 SUV가 유리한 수소전기차(FCV)는 SUV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자동차는 FCV 전용 플랫폼도 SUV 기반으로 개발하고 있다. 벤츠는 내년 수소전기 SUV를 내놓을 예정이다. 토요타는 토요타 및 렉서스 브랜드의 하이브리드 SUV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업체 전략도 SUV 중심으로 변화
최근 제너럴모터스(GM)는 SUV 인기가 영구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오는 10월 자사 비인기 세단 뷰익 베라노의 생산을 중단키로 했다. 포드는 지난해 일부 공장에서 포커스, C-맥스 등 생산을 중단하고 대형 SUV인 익스플로러의 생산을 확대했다. 마쓰다는 SUV에 집중하기 위해 픽업트럭 개발과 생산을 포기했다. 그 대신 이스즈로부터 픽업트럭을 공급받아 판매한다. 혼다 역시 이스트리버티 공장에서 판매가 부진한 승용 모델인 크로스투어의 생산을 중단하고 SUV 모델인 HR-V의 생산에 집중키로 했다.
세단 위주 전략을 펼쳐 온 현대자동차는 서둘러 SUV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는 세단인 쏘나타 생산에 주력하면서 SUV인 싼타페를 기아차 조지아공장에서 위탁생산(10만대) 했다. 미국 내 SUV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앨라배마 공장에서도 생산을 재개한 것이다.
구자용 현대차 상무는 “6월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싼타페를 연 5만대로 늘려 승용 시장 부진을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포츠카·세단 전문 브랜드를 강조해 온 업체들도 달라졌다. 재규어는 81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SUV인 F-페이스를 출시했다. 마세라티도 첫 SUV 르반떼를 선보였다. 롤스로이스는 오는 2018년에 SUV 모델 컬리넌, 애스턴마틴은 2019년에 SUV 모델 DBX(코드명)를 각각 최초로 출시할 계획이다.
SUV에 따라 실적 희비도 갈린다. SUV를 비롯한 레저용차량(RV) 모델이 많은 기아차는 지난 상반기 전 세계 판매량이 4.7% 줄어들었는데도 영업이익률은 20.8% 늘었다. 쌍용차는 소형 SUV 티볼리와 준중형 SUV 티볼리에어로 9년 만에 상반기 흑자를 달성했다.
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