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대한민국 먹거리 산업, 정부가 팔 걷어야

[ET단상]대한민국 먹거리 산업, 정부가 팔 걷어야

얼마 전 미국 테슬라는 `모델3`라는 보급형 전기자동차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전기차가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가격 경쟁력과 함께 충전소 같은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진다면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은 어떻게 될까. 미국 스탠퍼드대 에너지 전문가 토니 세바는 `에너지혁명 2030`에서 앞으로 전기차, 자율주행차, 태양광발전이 기존의 자동차 산업은 물론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산업을 완전히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들은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이런 예들이 한 조각 편린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크게 바뀌고 있다. 알파고와 `포켓몬 고` 게임이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이런 창조성 파괴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미 반도체, 철강, 자동차, 조선 등 기존의 우리나라 먹거리 산업이 점차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패스트 팔로워 지위도 유지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첨단 기술 개발, 미래 산업 육성에서 사람들에게는 미신이 있다. 정부는 가만히 있고 민간이 자율로 주도해야 하며, 민간이 가장 효율 높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기업은 단기 이익에 집중하고, 중장기 위험은 회피하려는 습성이 있다. 적어도 미래 먹거리 산업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선뜻 민간이 주저하는 분야에서의 징검다리 역할은 정부가 해 줘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9개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 프로젝트들은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과 수출을 늘려 국부를 키우기 위해 반드시 길러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미 선진국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어 따라가기에도 벅찬데 민간이 자율로 투자해 기술 개발을 하라고 정부가 손 놓고 방치한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루저인지도 모른다.

국가 연구개발(R&D),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에서 정부 역할은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신기술이나 신제품의 시장 수요를 만들어 줘야 한다. 수요 기업을 찾아 매칭해 주거나 공공 수요를 활용, 이른바 트랙 레코드를 만들어 줘야 그 경험이 발판으로 작용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 보잉사와 업무 협약을 맺고 국가 R&D 프로젝트로 민간기업, 국책연구소 등이 함께 항공기용 경량 소재를 개발해 수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좋은 사례다.

두 번째로 정부는 서로 다른 업종 간 융합을 이뤄 내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한다. 국내 모 연구원 박사는 자동차, 정보통신기술(ICT)은 우리나라가 세계 수준이지만 정작 국내 기업 간 협업은 부진하다고 토로한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 산업과 센서, 통신, 소프트웨어(SW) 기술 융합이 핵심이다. 그러나 자동차 회사에만 맡겨 둔다면 융합이 일어날지는 의문이다. 산·학·연·관이 머리를 맞대며, 관련 분야 핵심 기술 개발과 더불어 혁신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현장과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투자의 갭 메우기 역할을 해야 한다. 당장 사업의 경제성과 투자회수 기간을 따질 수 없는 분야에서 민간의 자발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 변수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부는 과감하게 혁신 R&D와 산업 육성 정책을 통해 먼 미래 대비에 온 힘을 쏟아 주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파괴적 혁신 흐름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에서 거대한 물결로 다가올 것으로 진단한다.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서서 세계 일등 기업을 둔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민간과 정부가 합심,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손잡고 헤쳐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 R&D전략기획단장(서울대 교수) hjpahk@osp.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