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여름 내내 사무실 실내 온도가 섭씨 30도를 넘었지만 에어컨을 켤 수 없었다. 그해 겨울에는 영하의 날씨 탓에 무릎담요를 덮고 근무하던 시절도 있었다. 전력 피크가 올라가는 걸 조금이라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이용해 직원들 업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태양광과 전기저장장치(ESS)를 연동해 피크시간 때 사옥에 공급하면 이 시간대에 에어컨 등 냉난방 기구를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실증을 통해 검증해야 할 게 많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 가파도에서 디젤발전기를 끄고 `풍력·태양광+ESS`만으로 자체 전력을 공급하는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100% 신재생만으로 280명에 가까운 섬 주민들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사례가 국내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해 경기도 구리시 한국전력공사 사업장에 적용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건물 전력 사용량을 10% 줄이고 부하를 5% 감축하는 설계를 완성했다.
구리 사업장 공사가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건물의 에너지를 신재생과 연계해 사용·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K-BEMS)` 모델을 탄생시켰다.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은 시각화된 운영 프로그램에 따라 건물의 전력 사용을 효율 높게 관리할 수 있다. 시스템을 이용하면 각 사무실에서 전력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불필요하게 켜진 가전제품의 전원도 차단할 수 있다. 심지에 화장실 비데나 퇴근한 직원의 PC도 스마트폰으로 끌 수 있다. 업무용 전기자동차 충전기의 충전과 사용량도 모니터링하고, 가전제품별 소비 전력도 통합 관리한다. 한전은 지난 2년 동안 전국 100개 사업소는 물론 수원시와 2개 중소기업에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을 설치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스마트 건물이 모이면 스마트타운이 되고, 타운이 모이면 스마트시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스마트시티는 점차 심화되는 기후 변화에도 대응이 유용하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 여름·겨울철의 전력 사용량은 더욱 늘어나고, 그로 인해 피크가 상승하면 화석연료 소비가 많아져서 기상 이변이 더 자주 발생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미 지난해 말 프랑스 파리 당사국회의에 참여한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이행하기로 서명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37%를 감축해야 한다. 이러한 신기후체제에서 능동 대응을 하고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스마트시티 연구와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시티가 구축되면 피크와 전력 소비가 줄고 설비 이용 효율은 높아져서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미 100여개 건물을 대상으로 스마트 빌딩을 구축, 피크와 소비 절감량을 목표보다 최대 23%까지 더 거뒀다.
스마트시티 구축은 도시 형태에 따라 다르다. 기존에 살고 있는 상가나 주거지를 리모델링하는 방식과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하고 만들어지는 신도시다. 이러한 대상은 전 세계가 동일하다. 어떤 도시는 수백년 된 도시도 있고 최근 건설되고 있는 도시도 있지만 이곳에 스마트그리드 기술을 적용하면 건축과 에너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복합이 가능해진다. 또한 에너지자립도를 높이고 건물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과 교통, 안전, 건강 등 쾌적한 삶의 터전을 이룰 수 있다. 화재나 교통사고, 태풍 같은 재난, 기상 재해 등도 예측과 대응 시스템에 의해 예방이 가능하다. 갑작스러운 재해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복구와 피해 구역 최소화도 할 수 있다.
궁극으로 스마트시티는 산업화·정보화를 거쳐 건축과 전력, 관련 산업과 ICT가 융·복합으로 조성되는 에너지화 시대의 주요 모델이 될 것이다. 경제와 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화석연료 사용이 증대될 것이기 때문에 도시 단위의 에너지 최적 관리 시스템 구축은 신기후체제의 가장 강력한 경쟁 모델이다. 스마트시티를 새로운 대외 경쟁 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이 시급한 시점이다.
황우현 한국전력 신사업기획단장 hblue@kep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