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과학기술 발목 잡는 경기도 연정

[기고]과학기술 발목 잡는 경기도 연정

116년 만에 찜통 더위가 찾아왔다고 한다. 지난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사무실 문만 열고 나가면 숨이 턱턱 막혔다. 누진세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이 무서운 이들에게 올 여름은 한마디로 지옥 같았다.

그러나 연일 계속되는 폭염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없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다.

경기도는 지난 3월 부실 공공기관을 정리하겠다는 취지로 `공공기관 경영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6개월 전이다. 민간 컨설팅 업체에 용역을 맡겨 25개 공공기관을 13개로 줄이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했다. 황당한 내용이 많았다.

현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자료와 분석 결과를 들이대 실소를 자아내게 한 부분이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말도 안 되는 용역 결과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과학기술계도 발끈했다. 경기도가 과학기술계와 담을 쌓으려 하는 것이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이후 경제 분야 산하 기관 통폐합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없던 일로 유야무야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을 폐지하고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 통폐합하기로 결정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통폐합 결정의 주체가 모호했다. 경기도는 연정에 공을 넘겼다. 하지만 통폐합을 결정했다는 1차 연정은 이미 해산됐고, 2차 연정 관계자들은 모르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도의회 의원들도 모두 자신은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는 듯 책임 회피에 바쁘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조정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빠져나가고 `무력 시위를 안 해서 이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 경기과학기술진흥원만 통폐합 대상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9대 국가전략프로젝트`를 선정했다.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자율주행차 △경량소재 △인공지능(AI) △스마트시티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정밀 의료 △탄소자원화 △미세먼지 저감·대응 기술 △바이오신약이다. 모두 과학기술 분야다.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약 1조6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 주도로 과학기술산업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경기도와 도의회는 `공공기관 경영합리화`로 시대에 역행하는 셈이다.

경기도는 우리나라 첨단기술과 산업의 중심지다. 매년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R&D)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32조원이 경기도에서 쓰인다. 전국 R&D 조직의 50%, 연구원의 35%가 수원·성남·용인·화성·안산 등 경기남부 지역에 모여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거대한 R&D 지역이다.

지난 2010년 경기도가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을 설립했을 때 도내 과학기술인들은 `경기도 과학기술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자부심으로 뿌듯해 했다.

그런데 민선6기 경기도는 `연정`이라는 정치 도구로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을 폐지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경기도의회는 경영합리화 대상을 결정하고 관련 조례를 입법예고한 데 이어 26일 경기과기원 폐지를 위한 조례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경기도의회에 바란다. 경기도의회가 과학기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1250만 도민에게 보여 달라.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경기도 과학기술을 지탱하는 보루다.

이연희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정책연구본부장 lyhee@g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