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지속되던 폭염이 간밤에 내린 비에 크게 꺾였다. 모처럼 높고 푸른 하늘에 선선한 바람 덕분에 유난히 길었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올 여름 더위는 좀 유난했다. 기온도 높고 습도도 높고 기간도 길다 보니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버렸다. 여름이어서 더위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언제 더위가 꺾이느냐에 더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예전보다 기상예보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됐다. 높은 관심은 곧 높은 기대를 불렀고, 높은 기대는 곧 높은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언론에서는 기상청을 `양치기 소년`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예전에 제갈공명은 부채 하나로 동남풍도 불렀다는데 우리 기상청은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서도 연일 예보가 틀린다고 야단이었다. 예보가 틀리는 원인으로 기상레이더의 노후, 능력 있는 예보관 부족, 기상 예측 모델의 부정확 등을 꼽고 있다. 원인이 뭐든 간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시대에 슈퍼컴퓨터를 사 줬는데도 예보 적중률이 이 모양이냐고 비난받고 있다. 기상청 입장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기상청 예측 정확도를 올리는 문제와 슈퍼컴퓨터 도입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 선진국에서도 기상을 지역별로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보 자체를 두리뭉실하게 하고 있다. 더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산악 지형이 많아서 국지적 예보를 정확하게 하기는 더욱 어렵다. 심지어 여름 소나기는 소 등을 가른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와 같이 지역별·시간별 예보를 정확히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슈퍼컴퓨터가 아닌 알파고를 도입했다고 해도 국민들 기대 수준에 부합하기가 힘들 것이다.
기상청 예보의 부정확성 문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지금 빅데이터가 모든 문제를 풀어 주는 만병통치약처럼 선전을 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문제의 원인을 찾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책이 나올 거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잠시 눈을 돌려 그동안 수행되었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프로젝트들을 보자. 경영자정보시스템(EIS), 경영정보시스템(MIS), 데이터웨어하우스(DW), 데이터마트(DM), 고객관계관리(CRM), 공급망관리(SCM)로 이어지는 BI 프로젝트들이 들어 간 노력에 비해 경영상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더 눈을 크게 뜨고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에 걸친 투자 효과를 보면 처음에 약속했던 비즈니스 효과를 제대로 구현한 예가 많지 않았다. IT와 경영이 일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외국 선진 기업을 방문하면 자료 하나라도 더 들고 오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모니터 화면의 사진을 찍어 오고, 전표나 출력물을 몰래 들고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쓸모없는 짓이지만 그때는 잘 정리된 출력물 하나 들고 오면 무슨 큰 기업 비밀이라도 들고 오는 것처럼 생각했다. 이런 유치한 생각을 했던 이유는 선진 IT를 도입하면 경영도 따라서 개선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IT와 경영을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데이터 시대다. 우리가 지금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IT(Information Technology)를 DT (Data Technology)로 바꿔 부르고 있다. 2020년에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200억개 이상의 기기들이 연결되고, 50제타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성되고, 2400억달러의 클라우드 시장이 형성될 거라고 한다. 예전에는 IT가 기업의 핵심 역량이라고 했다면 이제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가 핵심 역량이 됐다. 데이터가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되고 핵심 자산이 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IT 시대에 범했던 오류를 DT 시대에 똑같이 저질러서는 안 된다. 데이터 그 자체는 숫자로 표시된 팩트일 뿐이다. 이 데이터를 지식화하고 지혜로 발전시켜서 경영상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데이터 분석(Data Analyst)이 있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 데이터 분석(DA)은 비즈니스 자체에 대해 정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오는 수많은 DA 결과를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핵심 자산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할 수 없다. 데이터와 경영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도 계산을 빠르게 잘하는 큰 컴퓨터일 뿐이다. 슈퍼컴퓨터가 처리해서 내놓는 데이터들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비즈니스 용어로 해설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유능한 융합형 DA다. 이 DA가 데이터와 경영을 일체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컴퓨터를 도입하고 전사자원관리(ERP)를 도입하고 선진 패키지를 도입해서 그대로 따라하면 그 경영상의 효과가 대부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슈퍼컴퓨터도 정확한 예보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와 함께 데이터 시대가 개막했다. 그러나 데이터와 경영을 일체화시키는 비즈니스에 정통한 융합형 DA가 없다면 데이터 시대에 할 일이 별로 없다. 이런 데이터는 컴퓨터 서버에 잠자고 있는 원석일 뿐이다.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때 슈퍼컴퓨터나 선진 IT 도입에 앞서 비즈니스에 정통한, 비즈니스의 미래를 볼 줄 아는 그런 융합형 DA의 육성이 절실하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