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분석 역량이 세계 수준이라는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반 인프라가 외산 천지인데 분석 보고서만 잘 쓴다고 최고는 아니지 않습니까.”
한 국립대 유전체 전문가가 작심한 듯 쓴소리를 내뱉었다. 세계 수준의 의료 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ICT)을 보유한 우리나라가 유전체 분석 분야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유전체 분석은 인간 DNA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법을 제시할 `정밀의학`의 핵심 역량이다. 정부는 우리나라만큼 정밀의학을 발전시킬 환경이 잘 갖춰진 나라가 없다며 국가 프로젝트를 통한 글로벌 시장 선점을 다짐했다. 산업 육성 저해 요인으로 작용해 온 규제까지 풀면서 민간 유전체 분석 시장을 열었다.
목표는 적절하지만 방향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DNA 분석은 온전히 장비를 통해 진행한다. 수십억원이 나가는 DNA 분석 기계는 100% 외산이다. 유전체 분석 전문 업체라는 곳도 기계가 내놓은 데이터를 수집해 보고서를 만드는 수준이다.
공공시장은 더 심각하다. 정부가 진행하는 유전체 분석 사업은 상당수가 `개인식별`에 초점을 맞춘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이산가족 찾기, 범죄자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 대부분 개인 신원 확인 사업이다. 이 영역에는 유전자를 증폭시키고 개인을 식별하는 `시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험 도구부터 약물, 분석기기 등 종합 방법론에 가까워서 개인식별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다. 시약은 99% 외산이다. 그 1%라는 것도 이름만 국산으로 바꾼 외산 제품이 다수다. 국산 시약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검찰청에서 2012년부터 외산을 대체할 국산 시약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2014년에 개발을 완료했지만 현재까지 공공기관 도입률은 `제로`다. 수십억원의 국민 세금을 투입해 개발했지만 못 믿겠다며 도입을 거부한다. 과제를 수행한 기업은 공공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산과 동등성을 검증하는 실증 사업까지 참여했다. 성능에는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일부 영역에서는 더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대의학 결정체로 정밀의료 구현을 외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외국계 기업만 배불리는 목소리에 불과하다. 정부의 과감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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