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소프트웨어 프로덕트 라인(SSPL)은 유럽이 미국 제조업에 앞서나가기 위해 1990년대 개발〃적용한 소프트웨어(SW) 개발 방법론이다. SW의 각 요소(컴포넌트)를 재활용해 개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고, 개발 성공률을 높이는 게 SSPL 핵심이다.
산업에서 SW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SSPL 도입 필요성도 높아진다. 자동차 주요 기능 절반가량을 SW가 대체하고 있다. 과거 기계부품이 하던 일을 SW가 대체한다. SW는 자동차의 새로운 부품으로 기능과 원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의료기기 기능 상당 부분, 비행기 핵심 기능도 SW가 차지한 지 오래다. SW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생산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유럽 제조업, SSPL로 미국을 앞서다
SSPL 시초는 1980년대 미국이 추진한 `스타스` 프로그램이다. 미국은 주로 군사 분야에서 SW 개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스타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기서 사용하던 기술을 유럽이 제조업에 맞춰 개발하며 SSPL 개발이 본격화됐다.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자동차나 항공, 의료기기 등 세계 제조업 중심은 미국이었다. 유럽은 SSPL이 중심인 ITEA(IT for European Advancement) 프로젝트를 8년 단위로 운영하며 제조업 혁신을 시도했다. 자동차 SW 개발 방법론인 `오토사`도 당시 추진하던 과제 중 하나다.
결과는 놀라웠다. 보잉이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하던 비행기 제조 시장에서 에어버스 점유율이 50%로 상승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필립스, 지멘스 점유율이 50%까지 증가했다. GM, 포드가 휩쓸던 자동차 시장은 대부분 유럽 제조사가 점령했다.
유럽은 BMW, 벤츠, 아우디 3대 고급 자동차 업체를 보유했다. 2010년 이후 국내 수입차량 중 70% 이상이 유럽에서 생산된다. 미국 차량은 10%에 불과하다. 유럽 기업이 SW 개발 속도와 성공률을 높여 단순 대량생산에서 `대량맞춤생산` 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유럽은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이후 2014년까지 두 차례 ITEA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자동차, 항공, 의료, 통신, 가전 등 5개 분야가 핵심이다. 지금은 2021년까지 세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국내는 걸음마 단계
우리나라에 SSPL이 소개된 것은 2000년 이후다. 이단형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 회장은 국내에 생소하던 SSPL 개념을 전파하고 국제 표준화 단체에서 표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결과 2012년 SSPL의 여러 구성요소 중 국내 주도 첫 표준이 나오게 됐다.
이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은 SSPL 포럼을 결성하고 주기적으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지난해에는 한국소프트웨어기술진흥협회 회원사 중 3개 제조사에서 SSPL 파일롯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유럽은 SSPL을 중심으로 제조업 혁신을 일궜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를 잘 모르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중심도 SW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SSPL을 국내 산업계에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SSPL은 단순한 SW 개발 방법론이 아니다. 제조 기술과 조직 운영, 산업구조 등을 포괄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로 정의하는 전문가도 있다. SSPL은 플랫폼, 프로세스, SW, 시스템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기업 SW 역량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다. 원가와 유지보수비 절감, 품질개선, 출시시간 단축, 고객만족도 증진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방향성은 시장 리더가 되는 것인데 이를 위해 필요한 엔지니어링, 요구공학, 요소는 모두 소프트웨어가 중심”이라며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 SSPL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