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인적이 드문 골목 안. 고급 레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가게가 퇴근 길 불을 밝힌다. 가게 안 4~5명 손님이 진지하게 물건을 살펴본다. 음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판 `성인용품 숍`이다.
동네마다 보이는 성인용품 가게는 한번쯤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럼에도 짙은 노란색 혹은 분홍색으로 가려진 외벽은 `부정`과 `유해`라는 고정관념을 상기시켜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세상은 변했다. 성 가치관이 바뀌고,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성인용품도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다. 음지에 머물렀지만 산업으로 탈바꿈 시킨 것. 바로 `러브 테크` 힘이다.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플레져랩은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입소문난 성인용품 숍이다. 레스토랑을 연상케 하는 고급 인테리어, 밝은 조명, 각종 쥬얼리와 함께 진열된 성인용품은 세련미까지 느껴진다. 모두가 퇴근하는 저녁 7시가 넘어서자 손님들이 몰린다.
플레져랩 매니저는 “하루에 가게를 찾는 손님 수를 추산하기 어렵지만, 주말만 해도 손님이 몰려 끼니를 거르는 게 다반사”라며 “성적 쾌락을 즐긴다는 것이 점차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되면서 손님이나 성인용품 전문점도 당당해졌다”고 말했다.
당당해진 성인용품 시장은 성장세도 가파르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 성인용품 시장은 150억달러(약 16조8000억원) 규모다. 2020년까지 4배 가까이 증가한 520억달러(약 58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성장 속도에 맞먹는다.
국내 시장은 집계가 어렵다. 1000억~1200억원대로 추산될 뿐이다.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가게는 2500~3000개 정도다. 여전히 불법 성인용품 판매가 성행하지만, 플레져랩처럼 양지로 나온 곳도 점차 늘고 있다. 오픈한지 1년 만에 압구정동에 2호점까지 냈다.
성인용품 종류도 다양해 졌다. 대중 속으로 저변을 넓히면서 고객 요구사항을 신속히 반영한다. 노골적인 기구모형에서 벗어나 파우치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를 줄인 제품, 직접 목에 걸고 다닐 정도로 디자인이 뛰어난 목걸이형 진동기 등 수십가지 제품이 전시됐다. 가격도 1000원부터 시작해 50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도 수두룩하다. 기술발달로 정교해 졌으며, 안전성을 높이는 노력도 지속된다.
플레져랩 매니저는 “성인용품 대다수가 진동기를 탑재한 제품인데, 제조기술이 향상되면서 보다 정교해 졌다”며 “특히 모든 제품이 사용자 피부에 직접 닿는 만큼 제조과정에서 철저한 안전성 검사로 신뢰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여성용 성인용품에 주로 쓰이는 진동기술로 글로벌 진출까지 성공한 기업도 있다. 중소벤처 MS하모니는 국내 최초로 합법적으로 성인용품을 정식 수입, 유통했다. 그 후 진동기를 직접 제조해 벤처기업 인증과 이노비즈 확인서까지 획득했다. 이 회사는 기존 일자형 진동기에서 벗어나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고리형 진동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독일 유명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대표적 성인용품 콘돔도 변신을 시도한다. 지갑 속 일회용 피임도구에서 벗어나 고급화됐다. 인체 친화적인 윤활제 사용은 물론 첨단 소재까지 적용했다.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인 빅데이터까지 접목해 세상에 나왔다.
기존 콘돔은 주로 라텍스와 폴리우레탄 소재를 사용했다. 이후 이물감과 피부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천연 라텍스를 적용했다. 최근에는 석유 화학적 정제로 불순물을 제거하고 열전도성과 신축성이 뛰어난 폴리이소프렌을 원료로 사용한다.
콘돔 핵심 기능인 윤활제는 기존 실리콘 오일에서 친수성 오일이나 천연 알로에 성분을 가미한 제품이 개발된다. 실리콘 오일은 인체에 무해하지만 물에 잘 씻기지 않는다. 소비자 요구사항을 빠르게 반영한 제품이 쏟아진다.
국산 콘돔 브랜드 바른생각은 한국인 체형에 맞는 제품 개발을 모토로 삼는다. 20~30대 젊은 층으로 구성된 직원들이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숙박업소 등과 협업해 콘돔 둘레, 길이, 두께 등에 관한 피드백 데이터를 축적했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한국인 체형에 맞는 제품을 다양하게 출시했다.
회사 관계자는 “꾸준히 피드백 데이터를 축적해 한국인 체형에 적합한 다양한 모델을 출시했다”며 “카페, 숙박업소 등과 협업해 이벤트를 늘리고, 보육원 등과 바른 성 가치관 캠페인 등을 진행해 콘돔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해소하면서 매출도 덩달아 오른다”고 말했다.
ICT가 발전하면서 러브 테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는다. 하드웨어(HW) 중심 제품, 기술에서 소프트웨어(SW)가 적용된 솔루션, 서비스로 고도화됐다. 가상현실(VR)을 적용한 성인게임과 영상, 성인을 위한 숙박예약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ICT를 접목한 러브 테크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유해물에서 당당히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성인용품은 우리나라에서 산업표준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관련 업종을 운영할 때도 별도 인허가 제도가 없어 불법, 불량 제품 판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ICT를 활용한 러브 테크가 진화하면서 성인게임, VR 등으로 육체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해까지 우려가 나온다. 현대사회에서 성인용품을 산업 측면에서 바라보고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성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헬스케어 산업과 함께 영원히 성장할 산업으로 평가된다”며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성에 대한 보수적 접근이 강한데, 억압하고 숨기기보다 양성화를 통한 산업 육성, 관리·감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