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개혁`은 박근혜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시장 발전을 가로막고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불필요한 규제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한다는 취지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설치되고 규제정보포털이 개설됐다. 각종 규제를 제보하는 규제개혁신문고도 설치돼 국민 의견수렴이 이뤄진다.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되는 정부 정책 역시 최대한 규제와는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기조가 잡힌다.
지난 5월에는 대통령 주재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관계 부처 합동으로 `ICT융합 신산업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O2O 등 ICT 융합으로 탄생한 신산업 분야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지능정보사회에 선제적 대응하고 ICT 산업 재도약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허나 여전히 신산업은 날개를 펼치기 힘들다. 시장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기존 전통 산업계와 산업 구조를 뒷받침하는 규제 장벽 때문이다. 시장과 소비자에게 보다 넓은 선택권과 접근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발목 잡힌 핀테크
금융과 IT가 만나 새로운 서비스와 시장을 창출하는 핀테크는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 이용의 불편함을 개선한다. 국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 인터넷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상용화에 이르지 못한다.
근거리무선통신기술(NFC)을 이용해 신용카드로 본인 인증하는 기술은 복잡한 본인 인증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지만 규제에 막혀 서비스 도입이 지연됐다. 금융위는 기술 도입을 승인했지만 방통위가 유권 해석을 달리하며 제동이 걸렸다.
금융 분야는 기본적으로 규제 산업이다. 규제 하나가 해결되더라도 다른 규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다. 여러 법률에 규제가 중첩돼 개선이 쉽지 않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보수적, 관성적 규제 습성도 문제다.
중국은 비교적 자유로운 규제 적용으로 핀테크 산업이 단기간 내 급속 성장했다. 불과 수년 전만해도 카드 결제 보급률이 높지 않았으나 지금은 오프라인 상점 어디서나 QR코드로 모바일 결제가 가능할 정도다.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책임에 무게중심을 두는 규제 적용으로 핀테크 혁신에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핀테크 업계는 규제 적용 방식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허용되는 사항을 열거해둔 현행 `포지티브` 방식 규제에서는 새로운 서비스와 기술에 도전하는데 제약이 크다는 주장이다. 일부 법적으로 금지하는 사항 외에는 다양한 시도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네거티브 방식이 요구된다.
△날지 못하는 드론
드론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간 분야에서 드론을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된다. 드론을 이용한 택배 운송을 비롯해 물리보안, 건축물 관리, 레저 활동, 농업 지원, 항공촬영, 피자 배달까지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하늘은 드론이 쉽게 날지 못한다.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위한 상업용 드론 시험 비행조차 쉽지 않다. 드론 개발 활동이 제약 받는 사이 세계 시장은 중국 업체가 선점해 주름잡고 있다.
기존 국내 드론(무인기) 사업은 규제 적용으로 농업 지원과 항공촬영, 관측·탐사, 조종 교육 등 일부 영역에 한정됐다. 정부에서는 올해 5월 늦게나마 안보와 국민 안전을 저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드론 산업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드론 사용자가 큰 번거로움을 느끼는 비행승인 절차도 간소화할 계획이다. 드론 비행 허용 구역도 점진적으로 늘리고 드론 업체 설립 조건도 완화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드론 기술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음에도 각종 규제로 인해 대중화로 이어지거나 산업적 활용에 도전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규제 완화로 여건이 한층 개선됐지만 보다 자유롭게 하늘에 드론을 날리고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인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달리기 힘든 자율주행차
사람 대신 스스로 운전하거나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도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 기술은 미래 자동차 산업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경향이다. 각종 ICT와 융합해 사고를 예방하고 보다 안전한 교통 흐름을 구현한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물론 테슬라와 같은 신흥 전기차 기업과 구글, 애플 등 IT 업체도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국내 자동차·IT 업계도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매진한다. 그럼에도 까다로운 국내 자율주행차 임시 운행 규정으로 상당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율주행차 법제도 현안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조기에 실현하기 위해선 임시운행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부터 자율주행차 임시운행을 허용했지만 외국보다 허가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최근 일반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운전자라도 자율주행 표시된 자동차 번호판을 등록하면 차량 운행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었다. 미국 애리조나주는 `안전운전 관리자`가 없는 자율주행차도 시험운행을 허용한다. 미시간주 역시 무인자동차 테스트를 허용했다.
국내에서 자율주행차를 임시운행하기 위해선 고장감지장치, 경고장치, 운행기록장치 등 탑재가 요구된다. 임시운행 시 탑승자 요건도 운전자 포함 2인 이상으로 못 박았다. 국내 업체가 자율주행차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시험운행과 테스트에는 외국과 비교해 큰 제약이 따르는 셈이다. 사람 없이 주행이 가능한 완전자율주행 기술을 시험하려면 국내 개발 후 규제가 완화된 해외로 나가 테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수면 위로 떠오른 `규제프리존`
다양한 신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와 관련 법안을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기간 개선이 쉽지 않다. 전국 단위로 한 번에 풀기 어려운 규제를 지역별 특화산업에 맞춰 맞춤형으로 풀어내는 `규제프리존`이 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규제프리존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각 지역이 잘할 수 있는 분야 2가지씩을 정해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제도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고 재정·세재 지원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이 지난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지역에서 원하는 규제개선 사항을 건의하면 중앙에 설치된 규제프리존 특별위원회에서 개선해 나가는 구조다. 모든 규제유형에 대해 상시적 규제개선이 이뤄지도록 `원칙허용·예외금지`를 기본으로 하는 `네거티브 규제개선 시스템`을 도입한다. 기존 법령에 묶여있는 규제라 하더라도 특별법에서 특례를 부여해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선한다.
드론과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바이오의약, 스마트헬스케어, 에너지 IoT, 첨단센서, 탄소산업, 3D프린팅, 태양광 등 각 지역 전략산업으로 선정됐다. 규제에 가로막혀 기술개발과 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신산업 업계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미래 30년을 준비하기 위해 더 과감한 규제개혁이 요구된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