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인터뷰] 차승원, 내려놓음으로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묵직함을 견디다

사진=김현우 기자 / 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사진=김현우 기자 / 글 : 이주희 기자 / 디자인 : 정소정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조선시대 최고의 지도인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도꾼’ 김정호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김정호 역에는 차승원이 활약했다. 여기에서는 평소 스타일리쉬함을 뽐내던 모델 겸 배우인 차승원을 볼 수 없다. 남루한 행색과 구부정한 등을 가졌지만 눈빛만은 반짝거리면서 묵직하게 조선 땅을 하나씩 밟고 다니는 한 남자의 모습만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김정호가 걷는 모습이 담긴 프롤로그다. 백두산 천지부터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합천 황매산, 꽁꽁 언 북한강 등의 절경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사계절 풍경을 모두 담아내기 위해 ‘고산자, 대동여지도’ 팀은 촬영을 모두 마친 뒤에도 계절을 기다려서 또 찍어야 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기다려서 단편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나는 현장에서 땅만 보고 걸으니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찍히는 줄 몰랐다. ‘저랬었나’ 싶다.(웃음) 언 강을 걷는 신은 강추위가 되어야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강이 꽁꽁 얼었다고 하더라도 위험한 부분도 있다. 그곳을 걸을 때는 넓적한 신발을 신어야 해서 많이 불편했다.”

특히 백두산 천지의 모습은 마치 CG로 착각할 만큼 아름답다.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신이다. 극중 김정호는 백두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애국가의 첫 소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인데, 가보면 왜 첫 소절에 등장하는지 알게 된다. 백두산은 1800년대엔 더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산짐승이 얼마나 많았겠나. 김정호는 지금보다 여건이 안 좋은 상태에서 그곳을 오른 것이다. 그래서 말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도에 대한 애정이 엄청난 사람인데 만들고 나서 한 번쯤 답사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 곳을 다녔지만 백두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관광코스가 아니라 다른 길로 갔기 때문에 더 묘했다.”

김정호가 살았던 시기는 1800년대다. 신분이 모든 것을 지배했던 시대고, 지도가 곧 권력이었다. 이런 세상에 살았던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어 권력자가 아닌 백성과 나누려고 했다. 백성이 권력자를 위해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던 시대에서 백성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백성들에게 김정호는 어떤 의미였을까.

“조선시대에 애민 정신이 있었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물론 ‘애민’이란 단어 자체가 거창하다. ‘애민’이란 개인의 이익보다 함께 무엇을 하는 것인 것 같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널리 사랑하라는 느낌이 아니다. 김정호는 중인 신분이었고, 자신과 똑같이 불편을 겪는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지도를 만들었을 것이다.”

사진=김현우 기자
사진=김현우 기자

이번 작품은 강우석 감독의 스무 번째 작품이다. 그리고 첫 사극 도전이다. 차승원 역시 모델을 포함해 연예계에 입문한지 19주년을 맞이했고, 첫 실사 인물에 도전했다. 때문에 이 영화는 강우석 감독에게도 차승원에게도 인생에 포인트가 될 만한 작품이다. 의미 있는 일에는 부담감이 따르는 법. 게다가 오랜 만에 스크린에서 모습을 드러내기에 부담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차승원은 오히려 내려놓음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여러 모로 생각도 많이 했고 현장에서 나를 많이 내려놨다. 작품을 거쳐 나가면서 단단해졌다. 예전에는 계산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어느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하면 ‘또 이따가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내려놓음이 연기를 할 때는 더 자유롭게 된다. 당장 현장에서 연기를 하지만, 이 연기가 끝이 아니니까 나를 내려놓고 멀찌감치 바라보게 되는 게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부담감도 계속 있고 결과에도 욕심을 내야 하지만, 세상은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럴 바엔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수행해 나가면서 과정을 잘 해보자는 생각이 있다. 물론 계획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당장 한 시간 뒤도 모르는게 인생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