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료방송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학계 등 전문가 중심으로 별도 연구반을 가동하는 한편 관련 사업자별 입장을 피력한 제안서 접수는 마감했다. 국내 유료방송시장 활성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종합 대책은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제시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게 마무리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수합병(M&A) 불허, 점점 깊어져만 가는 유료방송과 지상파 간 재송신 문제, 통신사의 결합상품 마케팅으로 인한 방송 시장 황폐화 등 국내 유료방송 산업은 각종 문제를 안고 있다.
방송 시장 황폐화는 종국에는 이용자 피해로 귀결된다. 그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시도가 다양했지만 실효성 있는 방안 도출이나 실행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상황에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조정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도 문제 해결을 더디게 만든 요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미래부는 세미나에서 유료방송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사업자 간 갈등 관리가 아니라 시청자 입장을 최우선 고려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다소 소외돼 있던 이용자 편익이 정부 대책의 중점이라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유료방송 산업 근본에 대한 성찰이라는 측면에서도 정부 대책을 기대하게 한다.
유료방송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업자별로 기본 입장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SK텔레콤과 케이블TV 간 동등 결합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KT도 나름대로 상생 방안을 제안한다고 하니 기대와 함께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당면한 불공정 경쟁 지적을 우회하기 위한 말뿐인 선언에 그친다면 사회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유료방송 활성화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과정에서 케이블TV에 대한 인식과 자세 전환의 필요성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재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가고 있는 미국 케이블TV처럼 스스로 투자와 서비스 혁신 노력의 지속 없이 정부의 보호만을 기대해선 안 된다. 처음 유료방송이 도입된 후 지난 20년 동안의 공과를 냉철히 돌아보고 혁신을 통해 시장의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위기에 처한 케이블TV가 가야 할 길이다.
정책 당국의 분명한 의지 표명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없는 것은 그동안 많은 정책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청자 편익 증대를 위해 방송 산업의 ARPU를 정상화하고, 방송사업자의 허가 취지를 정책에 잘 반영해서 경쟁과 협조가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상생 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무료보편서비스라는 지상파방송의 자체 수신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디지털 전환 종료를 선언한지 몇 년이 흘렀지만 많은 시청자는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료방송에 대해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잘못됐다 할 수는 없지만 시청자 90% 이상이 유료방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케이블TV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강력하고 다양한 정책과 지원 방안을 동원하는 것이 시청자 편익에 기여하는 현실 대안이다.
케이블TV는 지역의 사회·문화 발전을 위해 다른 유료방송사업자와 달리 `지역성`이라는 맹아를 틔어 왔다. 정책 당국의 이번 대책 방안에 지역사업권의 광역화 문제가 포함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별사업자의 사업 환경 개선 측면에서 단기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지역성`의 근간을 흔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사업자 편익과 시청자 편익 사이에서 정책 당국의 기본 입장이 흔들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는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론을 내려야 할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고, 모든 시청자가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상생과 협력을 통해 유료방송 산업의 활성화와 시청자 편익 증대에 대한 기대가 한껏 충족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재호 동아방송대 교수 byljh@dim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