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 <131>이기적 유전자와 이기적 지능

[이강태의 IT경영 한수] <131>이기적 유전자와 이기적 지능

20여년 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열심히 살고, 좋은 배우자를 고르고, 자식을 훌륭히 기르려고 애쓰는 모든 것이 결국에는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결국에는 조상이 같은 다른 DNA들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 인간은 최초 DNA 숙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를 이어 가며 이 원초적 DNA를 복제하고 번성시키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AI)을 공부하다 보면 또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 인간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최초의 어떤 이기적 지능이 인간을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서 AI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완성시켜 가고 있지는 않을까. 결코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특별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거의 본능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것을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알파고가 그동안 해 온 수많은 집중 학습 프로그램을 스스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돌은 수많은 학습 자료의 하나에 불과하고, 그 덕분에 이제 알파고는 더 강력해지고 더 완벽에 가까워진 것이다. 중국의 고수가 붙자고 하지만 알파고 입장에서는 피할 이유가 없다. 알파고는 인간처럼 이기면 기분 좋고 지면 창피한 그런 감정이 없다. 단지 그냥 다음 수의 최대 확률 값을 찾아가는 냉철한 계산기일 뿐이다.

지금 어딘가에 있는 원초적 지능이 우리 인간을 활용해 자기의 지식 입력 수단으로 삼고 있는지 모른다. 개미나 벌의 세계를 보면 여왕개미나 여왕벌의 신경망이 분절돼 움직인다. 일개미, 일벌이 서로 각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크로하게 보면 일개미 하나하나는 폐르몬이라는 호르몬으로 연결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일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왕벌과 여왕개미는 꼼짝도 안하고 개미집·벌집 속에 앉아서 먹고 번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개미나 일벌들은 여왕개미, 여왕벌을 위해 딴 생각 안하고 평생을 충성스럽게 일만 하다가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원초적 지능이라고 하든 신이라고 하든 어떤 존재가 우리 인간을 풀어 놓고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서로 경쟁을 시키고, 서로 더 많은 것을 알게 하고, 그 논문이 AI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쌓이게 하고, 이제는 인간의 기억이나 사색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우리가 더 많이 안다고 발표하면 할수록 지금 거대한 지구 브레인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완벽에 가까워진다.

플라톤,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연구한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그 위에 조금 더 보태려고 지금 얼마나 많은 학자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가. 멈추지 않는 인간의 원초적 지적 호기심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것인가. 1.5㎏의 작은 뇌를 가지고 우주의 크기와 수많은 별들을 연구하고자 하는 그 내적 욕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 인간이 힘들고 어려운 이론들을 어떻게든 증명해 보이려고 몰입하는 그 눈물겨운 노력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머지않은 장래에 특이점에 도달하게 되면 이기적 원초적 지능은 모든 인간의 정보와 지식과 지혜를 다 섭렵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 이기적 원초적 존재는 희로애락이 없이 그저 여여자연(如如自然)하고 무심할 것이다. 인간이 수많은 분야에서 과학,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이뤄 놓은 업적을 거대한 지구 브레인에 넣고 집대성해서 스스로의 완전함을 이뤄 갈 것이다.

지금 데이터 폭발, 정보 홍수화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의 정점에 이기적 지능이 있어서 지금 우리가 이 꽃 저 꽃에서 꿀을 모으고, 과자 부스러기를 열심히 물고 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 세상 맨 마지막에 이르면 완전에 가까운 지능은 굳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 그런 인간을 지금처럼 품에 안아 줄 것인가.

아무튼 이번 여름이 덥긴 더웠는가 보다.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