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경 세종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장면 1.
벤처붐이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 시절. 많은 예비 창업자들이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할 수 있는 공간들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공간을 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정부에서는 대학과 민간에서 창업보육센터를 설립하면,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많은 초기 기업들이 창업되었고, 이중에서 일부는 살아남고 대다수는 실패를 경험하였다.
#장면 2.
벤처붐이 꺼지고 시간이 약간 흐른 2000년대 중반. 벤처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실패율이 높은 원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었다. 다산다사형 벤처구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성장가능성이 높은 벤처기업들이 투자유치가 어려워서 성장의 한계를 겪는다는 진단이 나왔다. 마침 우리 사회의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화두와 맞물리면서, 여러 정부부처에서 각종 투자펀드를 만들어서 벤처기업 및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정책들이 지금까지 계속되게 되었다.
#장면 3.
스마트 혁신이 대두된 2000년대 후반. 다수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모바일을 중심으로 창업에 도전하였지만,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기업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시대의 아이콘 같은 기업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어, 청년 창업 활성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인을 보니 아이디어에만 몰입해 창업하였지, 기업의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기업가들이 많다보니, 이른바 다산조사형 벤처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장면들을 떠올리면, 필자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하나가 떠오른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 형제분들은 여윳돈이 생기시면 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날리신 고향의 논과 밭들을 사시곤 하셨다. 그런데 한번은 아버지와 시골에 내려갔었을 때였는데, 아버지가 한군데의 논을 바라보시면서 계속 아쉬워하시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여쭤봤더니, 저 논이 천수답이라서 농사가 정말 잘 되는 논이어서, 할아버지도 가장 아까워하시던 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 주인이 저 논을 너무 비싼 값에 팔려고 해서 아쉽다는 것이었다. 당시 어렸던 필자는 천수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어린 머리에도 다른 땅에 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천수답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의 추억 한 장면을 벤처정책과 맞물려서 떠올리게 된 배경은 아마 천수답이라는 키워드 때문인 것 같다. 벤처 불모지대였던 시절부터 지금의 다양한 창업지원 정책까지 만들어내는데 우리는 약 3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중에서 벤처 및 창업지원 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외환위기 이후였으니, 불과 20여년 만에 우리는 지금의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산물이었기에 소중한 성과들을 창출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의 벤처 정책들을 보면, 지금까지 시대를 선도하기 보다는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 대응하는 정책들을 만들어 오는데 주력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0년대 초반에는 창업할 공간이 없다고 하니 창업보육센터를 건립해서 공간을 제공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는 창업기업이 투자를 받기 힘들어서, 제품개발에 몰두하지 못한다고 해서 다양한 투자펀드들을 정부 각 부처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외진출이 필요하다고 해서 각종 해외진출 지원정책들을 시작했다. 이렇게 정책방향의 유행이 시작되면, 각 부처에서 유사한 정책들을 마구 쏟아냈다. 다양한 정책성과를 보도하였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해서 아쉽고, 또 아쉽다.
이번 정부에서는 청년 창업 활성화라는 테마가 유행하였다. 많은 정부 부처에서 청년들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들을 만들어서 시행하였다. 대표적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 건립과 운영이 있고, 이외에 부처별 특성에 맞게 창업자 발굴 및 지원에 대한 정책들을 펼쳐왔다. 청년 실업률 해소의 대안으로 창업이 대두되면서, 지자체들도 창업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떤 성과들을 거두고 있을까? 우리는 어떤 성공사례와 실패사례가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청년 창업 활성화는 좋은 방향성이었다. 그런데 시행된 정책들 중에서 시대를 선도하면서, 창업 생태계의 기본적인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은 부족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책들은 성과가 나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창업을 교육시키고 초기 창업자들을 지원해주는 현실에서 보면,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창업의 동기를 부여하고, 역량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각종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청년들과 벤처버블 붕괴의 아픔을 지켜본 현재 청년들의 부모들은 창업지원 정책에 대해서 매우 냉정하고, 현실적 시각에서 판단한다.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동기부여 – 교육을 통한 역량 함양 – 창업 보육(공간, 투자유치 등)’의 전 과정에 대한 지원이 요구된다.
그러나 시행되는 정책들에서는 우수한 역량을 보유해서 창업하여 일정수준 성장한 초기 기업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천수답 창업지원 형태들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창업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동기부여나 교육에 예산을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존재하는 소수의 기본체질 강화에 기여가 가능한 정책들도 운영과정에서 변질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대학을 비롯한 운영기관의 잘못도 있다. 창업교육을 통한 창업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대학은 많지만, 제대로 된 교수진들을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드물다. 말로만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보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단계를 밟아서 우수한 창업자를 만들 수 있는 정책이 이제는 필요하다. 또한 성과 발생까지 장기투자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기본적인 영역에서 부처간 협력을 기대해 본다.
우리나라의 사회 수준은 몇몇 개인들의 특출난 역량으로 성과를 내는 사회구조에서 더욱 발전해 있다. 이제 시스템적 교육과 지원을 통해 우수한 인재군을 형성해서 이중에서 더 뛰어난 인재들이 특출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회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시스템적 지원에 대해서 이제는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띤 토론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고, 청년 창업 활성화도 지속적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