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에 의해 설립된 글로벌혁신센터(KIC)가 실리콘밸리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30여년 동아 몸담아 온 글로벌 대기업(IBM, 삼성전자 등)과 벤처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창업기업을 글로벌 스타 벤처기업으로 성장시킬 방법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친 지가 엊그제 같다. 그런데 벌써 약 110개 기업을 직간접 지원했고,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적잖은 성과도 나오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진출을 위한 많은 기업의 노력과 정부의 꾸준한 지원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기억에 남는 성공 사례는 딱히 없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지원 기업 선정 때 대부분 국내 전문가가 참여하다 보니 현지에서 선호하는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이 선정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로 해외 진출 역량이 부족한 기업이 선정된다. 자연히 성공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세 번째로 현지 문화 이해를 바탕으로 한 솔루션이나 제품 등이 재개발돼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현지화가 부족하다. 네 번째로 현지 주류 생태계와의 융합과 이너서클 진입 실패,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효율 지원을 위한 생태계 구축 미흡이다.
이 밖에도 현지 지원 기관의 전문성 문제나 단기성 행사 위주 등으로 현지 생태계에서 국내 스타트업의 미래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진출 시도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항모 군단이 아닌 일개 군함 형태로는 내실을 거두기가 어렵다. 그동안 정부가 뿌린 씨앗이 성공 사례를 계속 발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을 상시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KIC-실리콘밸리는 현지 투자자와 기술 전문가들이 직접 국내 창업 인재와 스타트업을 선정하도록 했다. 선정된 기업에는 KIC-실리콘밸리 사무실과 샌프란시스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 시장 검증(Market Validation) 등 길게는 1년 동안 현지 활동을 지원했다. 또 피칭과 기업가 정신 교육, 일대일 비즈니스 모델 개발, 잠재 고객 발굴 등 최종 투자 유치와 인수합병(M&A) 등을 위한 전문 멘토링을 진행했다. 현지 이너서클과의 네트워킹 교류, 투자자 데모데이 등 현지 생태계 노출과 센터 직원의 전문성 강화도 끊임없이 추진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년 반 사이에 1000만달러가 넘는 투자 유치, 현지 판매 등의 성과를 이뤘다. 주목할 만한 성공 사례로는 `해보라`(이어 마이크폰)를 들 수 있다. KIC-실리콘밸리에서 1년 동안 지원받으면서 현지 크라우드 펀딩 유치(189만달러) 성과를 거두는 등 우리 스타트업의 충분한 글로벌 잠재력을 확인하는 한편 후배 스타트업들에 글로벌 시장 진출 원동력을 다시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일부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 스타트업이 건너야 할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은 아직 깊고 넓어 보인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는 2만여개 스타트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 가운데 5%만이 투자를 받고, 이보다 더 적은 수가 성공한다. 기업의 성공과 자립을 위해서는 초기 엔젤 펀드로 후속 투자가 필수다. 미래부와 중소기업청은 초기 펀드를 제공할 수 있는 역외 펀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현지 진출 지원 생태계를 보완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세계를 무대로 뛰고 싶다면 이곳 실리콘밸리에 과감히 도전하라. 물론 성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충분히 해볼 만하며, 실패하더라도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생태계가 발달한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다. KIC-실리콘밸리는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이헌수 KIC-실리콘밸리 센터장hsrhee@kics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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