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10>첫 토종 반도체 장비 업체 한미반도체의 탄생

1981년 10월 제 1회 국제금형 및 관련기기전 전시회에 참가한 한미금형 시절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
1981년 10월 제 1회 국제금형 및 관련기기전 전시회에 참가한 한미금형 시절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

“모토로라에서 근무하던 13년 6개월 동안 반도체 공정, 장비 기술을 철저하게 배웠다. 당시 한국엔 장비를 만드는 곳이 전무했다. 모토로라에서 퇴사하고 1980년 한미반도체를 창업했다. 처음 손댄 것이 반도체 패키지 금형이었다.”

한미반도체는 국내 최초의 토종 반도체 장비 업체다. 창업자 곽노권 회장은 모토로라 근무 시절에 배운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한미반도체를 세웠다. 그때가 1980년 3월 7일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세워진 작은 반도체 패키지 금형 회사 `한미금형`이 지금 한미반도체 모체다.

반도체 금형은 당시 정밀도 1000분의 1㎜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초정밀 기술을 요하는 분야였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 몇 개 나라가 이 기술을 주도했다. 삼성반도체 등 국내 소자 기업은 반도체 후공정 장비는 물론 금형조차도 100%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다.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미금형의 첫 목표는 반도체 패키지에 들어가는 몰드금형 핵심 부품 `캐비티 바`의 국산화였다. 당시 국내 업계에서 캐비티 바 국산화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해외 업체의 반응은 달랐다. 모토로라는 한미금형 설립 이전부터 제품 공급을 요구했다. 곽 회장의 역량을 알았기 때문이다. 캐비티 바를 국산화한 한미금형은 모토로라코리아, 시그네틱스코리아 등에 공급을 성공시킨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 기업도 앞다퉈 한미금형에 제품 공급을 문의해 왔다.

성수동에 자리 잡은 한미금형은 몰려드는 주문량을 다 소화하지 못해 공장을 이전했다. 1980년 12월 경기도 부천으로 소재지를 옮기고 몰드 생산시스템을 체계화해 구축, 사업을 키워 나갔다.

1985년 3월에는 최초 자동화 장비인 오토프레임로더시스템을 양산했다. 금형을 자동으로 기기 위로 올려 주는 로딩 장비였다. 이 제품 1호기는 시그네틱스에 공급됐다. 한미금형은 이후로도 각종 몰딩, 마킹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하며 후공정 패키징 자동화 장비 양산 체제를 본격 구축해 나갔다.

곽 회장은 “회사 설립 초기에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꼬박꼬박 참여해 기술을 알렸다”면서 “이후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를 돌아다녔으며, 한미반도체 고객도 크게 늘었다”고 회고했다.

1986년 8월 한미금형은 인천시 서구 가좌동으로 이전했다.
1986년 8월 한미금형은 인천시 서구 가좌동으로 이전했다.
1980년대 한미반도체 인천 공장 전경
1980년대 한미반도체 인천 공장 전경

1980년대 중반 한미금형의 주요 고객사로는 삼성반도체, 현대전자, 아남산업, 금성반도체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었다. 시그네틱스, 모토로라, 인텔 등 외국 회사와도 거래량이 꾸준히 늘었다. 한미금형은 더욱 체계를 갖춘 대량 생산시스템 구축을 위해 1986년 8월 지금 인천시 서구 가좌동으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했다.

한미금형 역사에서 1980년대가 반도체 금형 국산화와 자동화 장비 양산 시기였다면 1990년대는 세계 품질 경쟁력 확보를 위한 첨단 기술 확립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1993년 2월에는 유압 방식 오토몰드 시스템의 성능 한계를 대폭 개선한 모터 방식 오토몰드시스템을 개발했다. 1997년에는 한미금형의 비약 성장을 견인한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를 처음 선보였다.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는 패키지를 자르고 검사해서 다음 단계로 넘기는 역할을 수행한다. 업계에서는 한미금형 장비를 사용할 경우 경쟁사 대비 생산량이 20~30% 증가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미반도체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
한미반도체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

소잉 앤드 플레이스먼트 장비는 현재 5세대 제품까지 나왔으며, 비전 플레이스먼트라는 장비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아직도 한미반도체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효자 장비다.

한미금형은 1996년 ㈜한미로 상호를 변경했다. 회사 사업 영역을 금형에만 한정짓지 않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2002년에는 회사 특징을 더욱 명확하게 인지시키기 위해 지금의 한미반도체로 상호를 바꿨고, 2005년 7월 주식 시장에 상장했다.

한미반도체는 세계 270개 고객사에 반도체 장비를 공급한다. 지난 6월 글로벌 반도체 조사 전문 업체 VLSI리서치 `2015년 고객만족 평가`에서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 10대 반도체 장비업체로 선정됐다.

한미반도체는 최근 인천광역시 서구 주안 국가산업단지에 제3공장을 준공했다. 제3공장 준공으로 한미반도체는 총 1만평 규모 제조라인을 보유하게 됐다.
한미반도체는 최근 인천광역시 서구 주안 국가산업단지에 제3공장을 준공했다. 제3공장 준공으로 한미반도체는 총 1만평 규모 제조라인을 보유하게 됐다.

한미반도체는 현재 비전 플레이스먼트 장비를 포함해 플립칩 본더, 전자파간섭(EMI) 차폐, 컴프레션 오토 몰드, 패키징 검사 등 다양한 후공정 장비를 다루고 있다. 레이저 장비 분야 진출도 선언했다. 각종 부품 등에 글자를 새기는 마킹, 잘라 내는 커팅, 구멍을 뚫는 드릴링, 원하는 높이로 정밀하게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어블레이션 등 장비를 취급할 예정이다. 레이저 장비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어 앞으로의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