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 국산화 논의가 본격 이뤄진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이다. 당시 삼성, 현대, 금성, 아남 등 국내 업체는 반도체 산업에서 괄목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장비 등 후방 산업계의 경쟁력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었다. 한국을 견제하는 미국, 일본이 장비를 주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나돌았다. 심지어 `칩으로 벌어서 해외 장비 업체 좋은 일만 시킨다`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국내에 반도체 장비 업체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소수 업체가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었지만 주목할 매출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부 정책에도 미흡한 점이 있었다. 예컨대 반도체 제조업체가 장비 완제품을 수입할 때는 정부로부터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장비 업체가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해 조립, 판매할 때는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된 장비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장비 업계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바로 한국반도체장비협회다. 1988년 6월 22일 출범했다. 베리안코리아 사장을 맡고 있던 김치락씨가 초대 회장, 곽노권 한미반도체 회장이 부회장을 각각 맡았다.
협회는 장비 업계 입장을 대변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이에 힘입어 1989년에는 상공부가 `반도체장비산업 종합발전계획위원회`를 구성했다. 당시 김보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장을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장비 산업 발전 세부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1991년에는 경기도 평택과 충남 천안 제2공단 3만3000여평에 반도체장비 전용 공단이 들어서기에 이른다. 당시 22개 반도체 장비업체가 이곳에 입주, 생산과 연구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반도체장비협회는 1991년 12월 상공부 인가를 받아 설립된 한국반도체산업협회로 흡수 통합됐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현재까지도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계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구조합을 통한 국책 과제 실시, 신장비 개발에 활용되는 고품질 패턴 웨이퍼 공급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