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 업계가 핵심 인력 유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이크로VC 도입, 사모펀드(PEF)에 대한 세제 혜택 등 벤처투자를 늘리기 위한 정부 정책이 외려 VC업계의 인력난을 더욱 키우고 있다.
29일 VC업계에 따르면 벤처투자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전문심사역 퇴사가 줄을 잇고 있다.
설립 17년차를 맞은 VC인 인터베스트에서 10년 넘게 몸 담았던 김명기 전무는 지난해 인터베스트를 퇴사해 LSK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지난 2월 처음 결성된 마이크로VC펀드의 위탁 운용사로 선정된 어니스트벤처스 백승민 대표도 한국벤처투자, 세종벤처파트너스 출신의 14년차 심사역이다. 지난 3월 사모펀드 운용사 등록을 마친 아우름자산운용 김태성 대표도 10년 이상을 VC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베테랑 심사역들이 이처럼 새 둥지를 꾸리는 이유는 더 이상 창투사가 아니어도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어서다.
올해 초 창투사를 나온 한 중견급 심사역은 “출자자(LP)와 충분한 교감을 갖고 있는 중견급 심사역들이라면 이제 더 이상 창투사 심사역에 머물지 않고 유한회사형(LLC) VC를 만들어 펀드를 조성할 수 있게 됐다”며 “경력을 쌓은 심사역들의 몸값이 앞으로 더 비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초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촉진을 위해 마이크로VC펀드를 신설했다. 이 펀드는 창투사 등록을 하지 않아도 펀드 핵심 운용 인력 2명만 있으면 결성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 창업·벤처기업에 출자액의 50% 이상을 투자하는 PEF에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방침이 기존 창투사의 역량 강화 없이 단지 벤처투자 외연을 넓히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초기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마이크로VC펀드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펀드 재원의 80%가 모태펀드가 출자한 돈이고 매년 3% 운용 보수를 주게끔 설계됐다”며 “적극적으로 유망 기업 발굴에 나서지 않고, 운용 보수만으로 먹고 사는 VC들이 우후죽순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창투사 투자 재원이 2012년 말 10조3566억원에서 지난해 말 15조5189억원까지 50%가량 증가하는 동안 전문 인력은 692명에서 845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문 인력 42.4%는 창투사 근무 경력이 5년도 채 되지 않는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VC시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심사역들은 대부분 증권사에서 넘어온 인재들이었지만 이제 그마저도 끊겼다”며 “이제 PEF도 벤처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되고, 신기술금융사 등록 요건도 낮아진 마당에 굳이 창투사라는 틀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VC업계에서는 정부가 단순한 외연 확장보다 VC 업계 질적 발전을 위해 힘을 기울일 때라고 입을 모은다.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좋은 인력이 회사를 나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일은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산업계 우수 인력들이 심사역으로 참여해 유망 기업 발굴에 나설 수 있도록 요건을 넓히는 등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노력을 정부가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