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 한쪽에는 `VR 음악회` 체험관이 마련됐다. 사람들이 헤드폰과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 가상공간에서 생동감 있는 클래식 음악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연 예술은 `그 시간, 그 자리`에서만 감상할 수밖에 없는 시간 예술로 일컬어진다. 기술 발달과 함께 실제와 같은 생동감과 사운드를 언제 어디에서나 구현해 주는 VR음악회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영상과 음향 기술 발전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점차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가상 세계에서 영상을 보는 것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사운드를 듣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게임, 영화, 음악 등 VR를 이용한 콘텐츠 산업이 점차 화두로 되면서 관련 음향 기술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실감 넘치는 VR 경험을 위해 영상의 질 못지않게 사운드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VR 사운드의 핵심은 영상의 움직임에 어울리는 소리가 3차원 공간 안에서 마치 실제처럼 들리도록 구현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화면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화살을 쏜다고 가정했을 때 소리 역시 발생 근원지와 이동 거리에 맞춰 함께 이동하는 것이다. 즉 가상공간에서 실제(현실)와 같은 생생한 경험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사운드 기술을 `입체음향기술`이라고 한다.
VR 관련 기술이 주목 받으면서 콘텐츠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초창기 VR 콘텐츠는 영상과 소리가 잘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 뒤편이나 머리 위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정확한 방향을 느낄 수 있도록 구현하기 힘들었다. 특히 사운드 소스가 물리 형태의 2채널인 헤드폰에서 입체 음향을 구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움직임에 따른 소리 차이를 생동감 있고 웅장하게 구현하는 `입체음향 기술`을 일반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도 가능하게 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사운드 솔루션 기업 DTS의 헤드폰:X(Headphone:X)가 대표 기술이다. 이는 2채널의 이어폰, 헤드폰에서 입체 음향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소리가 마치 외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듯 웅장하고 실감나는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해 준다. 헤드폰:X는 이미 우리가 듣는 음악, 영화와 같은 콘텐츠는 물론 스마트폰과 헤드폰 같은 디바이스에도 적용돼 있다. 유저들은 홈시어터가 없는 환경에서도 헤드폰만으로 전후좌우 및 천장은 물론 화면에 등장하는 오브젝트의 움직임에 따라 360도 입체 음향을 즐길 수 있다.
입체음향 기술 원리를 기반으로 VR 콘텐츠 개발 행보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 비단 음향 업체만은 아니다. 그래픽 카드로 유명한 엔비디아(NVIDIA)는 최근 물리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소리의 구현이 가능하도록 한 VR용 소프트웨어(SW) 개발 키트 `VR 웍스(VR Works)`를 선보였다. 구글 역시 웹에서 VR 서라운드 사운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옴니톤(Omnitone) 기술을 소개했으며, 페이스북은 VR의 현장감과 몰입 강도를 높이기 위해 3D 오디오 전문 기업 투빅이어를 인수했다.
이처럼 현재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협업이나 자체 기술로 VR 콘텐츠 개발을 진행, 계획하고 있다. 그 전략의 중심에는 청각형 VR를 가능하게 하는 `사운드`가 핵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영국 투자은행 디지캐피털은 증강현실(AR), VR시장 규모가 오는 2020년 1500억달러(약 173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입체음향 기술과 함께 가상공간에서 이전에 없던 최상의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 혼합현실, 융합현실 시대는 더욱더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체음향 기술 역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용되는 것을 넘어 의료나 교육, 관광, 쇼핑, 비즈니스 등 분야에서 더 많은 성장 기회와 함께 발전을 거듭하며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운드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줄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제용 DTS코리아 대표 Jea.Yoo@d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