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기획…더빙②] 배우들, 목소리로만 평가 받는다면?

출처 : '마당을 나온 암탉' '미니언즈' 포스터
출처 : '마당을 나온 암탉' '미니언즈' 포스터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연기와 거리가 있는 개그맨이나 가수들의 더빙을 믿을 수 없다면,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배우들의 더빙은 인정할 수 있을까. 배우들은 개그맨ㆍ가수와 같이 화제성이 있으면서도 연기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배우들의 더빙이 보편화되어 있다. 올해 초 자신이 참여한 애니메이션을 홍보하기 위해 내한했던 ‘쿵푸팬더3’의 잭 블랙은 물론, 얼마 전 개봉한 ‘정글북’ ‘장난감이 살아있다’ 등에는 스칼렛 요한슨, 니콜라스 홀트 등 세계적인 배우들이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처럼 할리우드에서는 톱배우들이 애니메이션 더빙에 많이 참여하는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 유승호, 차승원, 문소리, 류승룡 정도가 더빙을 한 적 있지만, 그외엔 찾기 힘들다. 게다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녹음했던 당시 유승호는 아역배우였고, 차승원은 ‘미니언즈’의 내레이터로 참여했을 뿐이다.

출처 : '달빛궁궐' 포스터
출처 : '달빛궁궐' 포스터

하지만 올 여름에는 성우 아닌 배우들의 참여가 부쩍 늘어났다. 영화 '서울역'에서는 류승룡, 심은경, 이준, 그리고 영화 '달빛궁궐'에서는 이하늬, 권율, 김슬기 등 배우들이 더빙에 참여했다. ‘달빛궁궐’의 김현주 감독은 성우가 아닌 배우에게 더빙을 맡긴 이유로 “성우ㆍ 배우의 제한을 두지 않고 목소리로만 들었을 때 과연 영화를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고민했다. 매화부인은 캐스팅 1순위가 이하늬였다. 실제로 이하늬는 내가 생각했던 매화부인의 목소리와 싱크로율이 놀랍도록 같아서 깜짝 놀랐다. 다람이 역할은 중성적이고 아이 같은 느낌을 생각을 했는데 김슬기 연기를 보고 굉장히 반했다”고 전했다.

또한 김현주 감독은 한국에서 배우들의 더빙 참여가 할리우드보다 많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도 꾸준히 배우들이 더빙을 하긴 했다. 어떤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한국 애니메이션 수 자체가 적다보니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작품 자체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배우에게도 더빙은 전문 분야가 아니다. 배우는 실사 작품 속에서 목소리뿐만 아니라 눈빛, 표정, 행동 등 비언어적인 요소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목소리로만 평가받는 성우들과 다르기 때문에 분명 배우들에게도 고민이 필요하다.

출처 : '서울역' 포스터
출처 : '서울역' 포스터

‘서울역’의 여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한 심은경은 “성우 연기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전문 성우가 있는데 섣불리 도전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도 했다. 실감나게 캐릭터의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독님이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역’의 경우엔 일반 애니메이션 더빙 현장과 달리 선(先) 녹음이 이뤄졌다. 이준은 “이전에 더빙을 할 때는 입 모양의 싱크로율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는데, ‘서울역’은 스케치만 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입 모양보다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한 것처럼 먼저 기본적인 그림 틀을 만든 후, 배우들이 목소리를 연기했고, 그 뒤에 더빙에 맞춰 그림을 입히는 과정을 거쳤다. 덕분에 배우들은 한계선 없이 연기에 대해 신경 쓸 수 있었다.

‘서울역’의 연상호 감독은 배우를 섭외한 것을 “연기를 하는 아티스트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 글 사이의 부족한 점을 연기로 채워준다. 때문에 배우의 능력을 보고 캐스팅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 감독은 “전문 성우를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내가 성우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기 때문에 캐스팅이 어렵다. 50대 남자 캐릭터라고 해도 나이만 맞는게 아니라 톤이 맞아야 한다. 내가 제작을 맡은 ‘카이: 겨울 호수의 전설’에서는 성우들이 참여했는데, 생각과 비슷한 목소리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다.

다만 이에 대해 한 성우는 “‘성우를 찾기 힘들다’ ‘주변에 성우가 없다’라고 말을 하기엔 한국에 성우들이 많이 존재한다. 일단 성우협회에 800여 명의 성우들이 있다. 물론 일일이 찾아내기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성우는 “성우협회에 어떤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요청을 하면, 추천을 하거나 데모 테이프 등을 준비해준다. 때문에 충분히 성우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디션을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