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전자 분석 기업이 세계 최초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각막이상증 치료제 임상 시험에 착수한다. 세계적 석학 참여는 물론 유럽 국가로부터 자금 지원까지 받아 불치병으로 인식되던 각막이상증 정복을 시도한다.
아벨리노는 각막이상증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1상을 연내 시작한다고 5일 밝혔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안과 분야 최초 치료제 개발인 만큼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세계에 알릴 기회다.
각막이상증은 투명한 각막에 뿌연 혼탁이 생기는 유전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10세 이전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사춘기를 지나면서 혼탁이 발생해 심하면 실명된다. 현재까지 치료법은 없다. 각막이식을 하더라도 이미 망가진 유전자 때문에 시력 저하가 재발한다. 세계 772명 중 한명 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라식, 라섹 등 시력교정술이 보급되면서 발현이 급증한다고 보고됐다.
2008년 창업한 아벨리노는 각막이상증 등 유전성 안과 질환을 전문으로 한다. 각막이상증 5개 유발 유전자를 사전에 파악한다. 국내 바이오 기업 최초로 지난해 다보스포럼 테크놀러지파이오니어 기업에 선정됐다. 유전자 검사를 넘어 치료제 개발까지 시도한다.
치료제 개발은 영국 얼스터 대학교와 손잡으며 속도를 냈다. 영국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얼스터대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적 경쟁력을 갖췄다. 세계 대학 상위 3%에 속한다.
아벨리노는 올 6월 얼스터대와 공동 연구 협약과 지식재산권 계약을 체결했다. 대학이 보유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과 아벨리노 각막이상증 유전자 분석, 임상 연구결과를 합쳐 세계 최초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시도한다.
얼스터대 바이오 메디컬 연구소 이사인 타라 무어 교수가 아벨리노 R&D(연구개발) 총괄로 합류해 치료제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타라 무어 교수 연구팀은 최근 쥐를 대상으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각막이상증 치료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전임상에 성공하면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 착수할 계획이다.
타라 무어 교수는 “각막은 우리 몸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며, 밖으로 돌출돼 물질을 주입하거나 관찰하기 쉽다”면서 “문제 있는 유전자만 골라 편집하는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기술을 적용하면 치료제 개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수많은 DNA 중 병 들거나 망가진 것만 뽑아 편집하는 기술이다.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유전자 가위를 연구한 조지 처치 하버드의대 교수와 펑 장 MIT교수가 거론될 만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암이나 희귀질환 연구가 아닌 각막이상증에 적용하는 것은 아벨리노가 최초다. 망막 분야 기초 연구가 진행될 뿐 아니라 각막 임상에 착수한 사례도 처음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은 글로벌 시험으로 진행된다. 시험 국가와 규모를 협의 중이다. 세계 각국도 아벨리노 연구에 관심이 높다. 영국 정부는 수십억원 규모 연구비 지원을 약속했다. 덴마크도 올해 내 지원 펀드를 확정할 계획이다. 중국 상하이 정부가 출자한 인터내셔널 메디칼센터(IMC)는 300여평 연구시설을 무상 제공한다.
올해 임상 1상에 착수하면 이르면 2018년 치료제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 최초 각막이상증 치료제 개발을 국내 기업이 이룬다. 고가 치료제인 만큼 수십조원을 호가하는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진 아벨리노 회장은 “이미 쥐를 대상으로 한 전임상에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효과를 확인했다”며 “올해 안에 글로벌 임상에 착수해 각막이상증 치료제 개발은 물론 다른 유전성 안과 질환까지 확대해 관련 분야 최고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