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려고 애써도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분쟁이란 대개 뒷맛이 씁쓸한 법이지만 `갑질`로 인한 분쟁은 특히 약자에게 억울함과 분노를 남기기 마련이다. 해결도 보상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을`들은 분쟁 해결 절차를 거치는 도중에 체념하고 `갑`에게 굴복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 과정의 부당 행위를 조사해 법 위반 사업자를 제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만 을이 본 피해에 대한 금전 보상을 직접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공정위는 손해 배상과 같은 피해 구제 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를 갖고 또다시 법원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소송 역시 을에게는 녹록지 않다. 판결까지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사실 관계를 확인할 만한 증거 자료가 없다면 재판에서 이기기도 어렵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고 경제력이 없는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자본과 정보로 무장한 대기업에 대항하기 힘들다.
갑·을 간 분쟁에는 엄밀한 재판보다 이해 관계에 집중하는 조정이 적합하다. 공정거래조정원은 이른바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조정해 중소사업자의 피해를 구제하고 있다. 조정원은 공정위 조사와 소송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한 대안으로 최근 많은 분쟁을 해결하고 있다.
B씨는 최근 조정원의 도움을 받았다. B씨는 삼겹살구이 전문점을 운영하던 개인사업자였으나 가맹점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창업박람회에서 쇠갈비 전문점 가맹본부를 알게 됐다. 본사는 지금이 아니면 가맹금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B씨를 부추겼다. 결국 정보공개서를 받은 지 닷새 만에 성급하게 계약을 체결했다.
개업 두 달 만에 위기가 닥쳤다. 본사가 B씨 가게 인근에 가맹점을 개설한 것이다. 가맹계약서상 B씨의 영업 지역은 점포 반경 800m다. 그러나 B씨 가게에서 500m 떨어진 거리에 본사는 또 다른 가맹점을 내줬다. B씨는 인근 가맹점을 상대로 법원에 영업금지가처분을 신청하고 본사에 항의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시내 중심인데 500m나 떨어져 있는 가게가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였다.
B씨는 본사를 가맹사업법 위반으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우선 본사와 조정을 해보라는 권유였다. B씨가 동의하자 사건은 조정원으로 이관됐다. 약 2개월 조정 과정을 거쳐 조정원에서는 영업 지역 침해로 감소한 B씨의 영업 이익을 감안, 본사가 B씨에게 1200만원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B씨와 본사는 조정원 권고대로 합의하고 가맹 계약을 해지했다.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B씨는 오랜 시간 본인의 영업 이익 감소가 영업 지역 침해 때문인지를 두고 본사와 지루한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소송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분쟁의 90%는 조정으로 해결한다. 미국 연방법원 분쟁 사건 가운데 재판을 끝까지 진행해 판결을 받는 사례는 1.5%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분쟁 사건의 3분의 1을 조정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분쟁 가운데에서도 60%는 소송 진행 도중에 화해로 종료한다.
조정원의 분쟁 조정 건수 또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5년 조정원에 접수된 사건은 총 2124건으로 2012년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소송이 아닌 조정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조정원은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전문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소송에는 상당한 변호사 비용이 소요되지만 조정원에서는 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엄격한 절차가 요구되지 않아 진행도 빠르다. 소송은 보통 소장 접수 후 2개월이 지나야 첫 출석이 잡히지만 조정원에서는 2개월이 지나기 전에 사건을 종결한다.
조정을 통한 분쟁 해결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분쟁 사건 수를 고려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소송과 판결만이 옳은 결론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조정으로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중소 사업자가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배진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jcbae22@kofai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