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요건`도입에...발행사 `자금조달 기대감`, 주관사는 `역할`, `책임` 강화

상장공모제도의 대대적 개편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자본시장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춘 만큼 유망 기업을 발굴할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도 동시에 강화된다.

금융위원회가 5일 발표한 `상장·공모제도 개편 방안`의 핵심은 적자기업도 자본시장에서 직접 금융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테슬라 요건` 신설이다. 재무 상태 평가 대신 혁신 기업을 발굴한 주관사의 판단이 코스닥 상장에 주된 요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위는 혜택과 규제를 함께 내걸었다. 상장 주관사의 기업 발굴을 유도하면서도 상장기업 도산에 따른 투자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을 계기로 코스닥 시장의 정체성을 유통 시장이 아닌 기업의 자금 조달 시장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그간 주관사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기업을 선별하지 못하고 이미 안정된 기업을 상장시키면서 지분 매각을 중개하는 역할에 안주했다”며 “상장 주관사의 자율성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동시에 무분별한 상장·공모로 투자자보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관사와 기관투자자 책임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상장·공모제도 도입으로 증권사가 얻는 혜택은 발행 기업에 대한 신주인수권 부여와 자율적인 수수료 체계다. 적자 기업 추천으로 인해 생기는 위험 부담 대신 추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은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도입됐다. 상장 주관사의 추천 여부가 상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 만큼 도덕적 해이를 막고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 팀장은 “기본적으로 코스닥이 발행 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사들이도록 한 풋백옵션은 다소 증권사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상장 주관사와 벤처금융 간 연계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공모제도 개편으로 벤처캐피털(VC)과 벤처펀드, 사적 연기금까지도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미래성장가능성 중심의 분석과 투자에 장점을 가진 VC가 수요예측에 참가함으로써 이들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보다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코스닥시장에서 VC의 역할이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업계에서는 유망 벤처기업에 대한 장기 투자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상장·공모제도 개편이 앞서 도입된 기술평가특례 상장과 유사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술평가특례를 통해 상장한 기업 대부분은 상장 후 5~6년이 지나서야 성장 궤도에 오르고 있다. 실제로 기술평가특례 상장 1호 기업인 크리스탈지노믹스는 상장 이후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하다 지난해 비로소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 관계자는 “지난해 2월 신약 허가를 받으면서 성장에 모멘텀이 마련되기 시작했다”며 “기술 투자를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 비용이 필요한 기간 동안 코스닥 시장을 통해 자금조달할 수 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