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건 서울산업진흥원 동대문쇼룸팀장
나는 만화를 무척 좋아한다. SBA에 입사 당시 우리 회사에 애니메이션센터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생각이 내가 우리 회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 중에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한다.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당시였다. 만원 지하철에서 지긋하게 나이가 드신 중년 한분이 서계시다가 옆에 있는 나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듯이 지하철 의자에 앉아 만화를 보고 있는 젊은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젊은 녀석이 만화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네. 나라가 어떤 꼴이 나려고 저러는지... 쯧쯧” 하면서 혀를 차는 것이었다. 정장의 왼쪽 가슴에는 말만 하면 다 아는 대기업 표시가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까 자리에 앉은 젊은 청년이 읽던 만화는 나의 오마주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만화였다.(나중에 지인을 통해 안 사실인데 그는 반한파라고 한다.) 그 작가가 만든 지브리 스튜디오가 일 년간 낸 순익이 우리나라 대기업이 열심히 차 팔고 배 팔아서 만든 순익보다 높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했다.
꼭 공장에서 만든 무엇인가를 팔아야 사업이고 장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뭘 만들어야 수출을 할 수 있고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예전 우리나라의 일자리는 한마디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많이 팔아서 돈을 벌면 그것이 좋은 일자리였다. 그리고 남들이 다 알아주어야 좋은 일자리였고, 부모님이 칭찬해 주는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였다. 신붓감의 부모님이 좋아하면 좋은 일자리였다. 특히 안사람에게 대접받는 일을 해야 좋은 일자리였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는 그 상황이 바뀌고 있다. 스스로들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일자리를 찾는 이들이 많이 늘고 있다. 그렇게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고 그것이 돈이라는 재화를 창출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고 직업을 찾는 세상에서 점점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벌써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생긴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왜 저들이 그러한 시선과 언행을 일삼는 걸까? 이러다가 우리 아들에게도 한 대 맞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우리 아들 덩치가 이젠 나보다 크다.) 그냥 이대로 ‘요즘 젊은 것들이란...’ 이러며 살면 되는 것일까? 그럼 우리 어른들은 뭘 해야 할까?
그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그래서 생긴 일을 연구해서 직업을 찾아주고 무슨 직업이 앞으로 선호될 것이라고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그러나 내 생각엔 이게 정답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인정해주고 늘 박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들이 길을 찾기 시작할 때부터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그리고 그들이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서 먼저 길을 닦아주어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일이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회가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더불어 그들 뒤에서 그들을 우러러 보며 따라가는 많은 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 말만 했지 정작 우리사회에서는 일등만 기억하지 않는가? 체조 요정 손연재는 피나는 노력을 하고 세계랭킹 4위에 올랐다.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리듬체조를 잘한다는 얘기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전 세계에서 4등 안에 들어가는 일을 하고 계신 분 있으시면 손 들어보시라. 스스로도 못 하면서 1등이 아니라고 기억에서 잃어버리고 박수 쳐줄 자세가 안 된 어른 세대. 이런 것이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닐까? 서두에 말했지만 자기가 하는 일만 중요하고 대접 받아야 하고 부모님께 인정받는 일만 좋은 직업이라고 인정하던 우리 어른들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얼마 전 리우 올림픽이 끝났다. 우리나라는 이번에도 10위 안에 들어가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금메달 8개였나? 그리고 은메달과 동메달 수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태권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젊은 그리고 아주 자랑스러운 선수가 기억이 난다. 이대훈 선수. 그는 상대선수를 향해 자신을 이겼지만 훌륭하다고 인정하며 박수를 쳐주며 기뻐하였다. 이대훈 선수가 정말 멋져보였다. 칭찬에 인색하던 언론에서도 그날 여러 차례 방송을 내보내며 훌륭한 정신이라고 치켜세웠다. 자신도 동메달을 따기 위해 흘렸을 땀과 좌절하며 흘렸을 눈물,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기쁘게 상대편을 안아주었던 그 모습을 세상은 기억할 것이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은메달, 동메달이 몇 개인지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중 금메달을 따서 애국가가 울리는 모습을 문득 보게 되었다.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예전에 내가 눈물을 흘리던 이유와는 확연히 다른 이유였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고통과 좌절을 수도 없이 겪으며 그래도 내일을 위해 참고 견디며 몰래 흘렸을 눈물이 느껴졌다. 그들의 아픔과 동화되어 나오는 눈물. 금메달을 따서 국위 선양을 하게 되었다는 막연한 눈물이 아닌 고통과 좌절을 함께 느끼는 눈물이었다. 나도 이젠 나이가 드나보다.
자! 이제부터라도 스스로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멋진 젊은이가 있으면 박수를 쳐주자.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박수쳐주자. 그러다보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젊은이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고 모인 사람 중에 같이 박수치는 사람이 나오고 박수에 흥이 난 젊은이가 뭔가 보여주면 우리는 뜨거움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젊은이가 뭘 하려는지 보게 되고 좋은 후원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리우 올림픽을 보며 흘린 눈물과 같은 눈물 흘릴 기회가 자주 왔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 주책이지만 기쁨에 겨운 눈물은 건강에도 좋다는 말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