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KAIST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국정감사에서는 기초과학기술 연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출연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현재의 출연연 관리 체제로는 양질의 연구개발(R&D)과 기초과학 융성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장 출신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구조 개혁이 시급하다”고 운을 뗐다.
김 의원은 “ETRI는 과거 TDX, CDMA 등 대형 과제를 중심으로 굵직한 성과를 내며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해 왔지만 최근 10년간 시장에서 큰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는 대형 과제는 고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형 연구 성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기술 트렌드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2008년 455억원 수준이던 ETRI 기술료 총수입이 지난해 320억원으로 떨어졌다”면서 “ETRI 개발 기술이 갈수록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은 “ETRI가 주요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학·전기·원자력연의 연구 부정 행위 대처를 문제 삼았다. 변 의원은 “3개 연구원은 부당하게 성과를 얻은 논문을 제대로 확인치 않고도 실적으로 인정했다”면서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도 `주의 처분`을 내리거나 징계를 내리지 않는 등 제 식구 감싸기를 일삼고 있어 중장기적 연구기관 질적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질타했다.
이은권 새누리당 의원은 “출연연의 연구생산성이 4%대에서 하락 또는 정체되고 있다”면서 “연구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에 부응하는 연구를 위한 민간수탁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의원은 “출연연이 최근 5년간 출원한 특허는 4만5090건에 달하지만 기술 이전한 건수는 1만3989건으로 30.82%에 그쳤다. 10건 중 7건이 사장된다”면서 “정리할 특허는 과감히 정리하고, 사업화 가능성에 엄격한 평가 없이 성과위주의 마구잡이식 특허 출원과 사업화 전략 수립 없이 특허를 방치하는 방만한 운영으로 혈세와 인력을 낭비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생연수생(학연생)과 비정규직 문제도 제기됐다.
문미옥 더민주 의원은 “2013년 비정규직 시행관리책에 따라 비정규직이 큰 폭으로 줄었는데 그 빈자리를 학연생이 채우고 있다”면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학연생 비중이 총원의 50%를 넘는다. 비정규직 대신 학연생 수를 늘린 편법 아니냐”고 추궁했다.
같은 당 김성수 의원은 “최근 5년 사이 학연생이 45%나 늘어난 것은 이상한 일”이라면서 “같은 기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9%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도 “출연연의 정규직 연봉은 6808만원으로 비정규직 4108만원에 비해 평균 1.7배, 연구수당은 3배 가까이 많다”면서 “비정규직 중 20~30대가 78.7%로, 젊은 연구원들이 부당한 대우에 신음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정부의 출연연 비정상 관리가 출연연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은 “출연연이 법적으로 기타 공공기관으로 구분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문화가 실종됐다”면서 “출연연을 강원랜드나 산업은행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의원은 “정년이 환원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연구원 사기를 저하시킨다”고 꼬집었다.
같은 당 신용현 의원은 정부가 과학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제대로 된 혁신 대신 무리한 `경영 혁신`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신상진 미방위원장은 “출연연을 기타 공공기관에서 제외시켜 연구원들의 정년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주의예산제도(PBS)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오세정 의원은 “연구원 설문조사에 제도 유지 반대 의견이 64%에 달했다. 연구 자율성을 없애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변재일 의원도 “기초과학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에 독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PBS 제도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많은 부분이 축소돼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이 이사장은 출연연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미래부와 기획재정부에 과학계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의원입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무분별한 출연연의 분원 확대가 연구 비효율을 부른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은권 새누리당 의원은 “지역 분원과 센터 대상 기관 평가에서 41개 기관 중 우수를 받은 기관은 4곳에 불과했다”면서 “분원의 우후죽순 설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학기술정책의 기조를 크게 훼손하고 연구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더민주 의원도 “분원 설치는 효과적인 R&D 연구보다는 지역정치권의 요구로 이뤄졌다”면서 “정렬작업을 취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이사장은 “이미 분원 3곳은 통폐합을 결정지었다”면서 “분원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앞으로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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