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기조 강화에 따른 무역분쟁 증가로 수출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각 기업이 상대국 정부에 맞대응하기도 쉽지 않아 결과가 안 좋은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최근 국제 무역분쟁 대응 사례 중 이례적으로 거의 전 항목에 걸쳐 승소한 경우가 나왔다.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조치에 대한 분쟁에서 최종 승리한 사례다. 향후 무역분쟁 대응에서도 참고할 수 있을 만한 모범사례로 평가된다.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는 지난 7일 “2013년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9~13%에 달하는 반덤핑관세를 부과한 조치는 WTO 협정에 위반된다”는 내용의 최종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판정으로 미국은 기존 반덤핑 조사기법을 수정해야 한다. 앞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한국산 세탁기 미국 수출은 물론이고 향후 우리 기업 전체 대미 수출에도 긍정적 영향이 기대된다.
이번 분쟁은 지난 2011년 12월 월풀이 미국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한국산 대형 가정용 세탁기를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조사와 예비판정, 실사, 공청회 등을 거쳐 2013년 1월 ITV는 삼성전자에 9.29%, LG전자에 13.0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또 삼성전자에는 1.85%의 상계관세도 부과했다.
이에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와 삼성전자, LG전자가 함께 대응에 나섰다. 정부 역시 WTO 제소를 공식 발표하고 변호사 선임비용까지 분담하며 적극 지원했다.
정부와 업계, 협회가 적극 공조를 펼치며 대응한 결과 국제 무역분쟁 사상 이례적으로 완전 승소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상소기구는 미국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판매를 표적덤핑(targeted dumping)으로 판단한 것 △제로잉(zeroing)을 적용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것이 모두 WTO 협정에 위반된다고 판정했다.
제로잉은 덤핑 마진 산정 시 수출가격이 국내 정상가격보다 낮은 경우(덤핑)만 반영하고, 수출가격이 국내 정상가격보다 높아 덤핑이 아닌 경우에는 이를 계산에 반영하지 않고 `0`으로 처리해 최종 덤핑마진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방식이다.
상소기구는 상계관세 쟁점에서도 삼성전자의 전체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제혜택을 세탁기 보조금율 계산에 전액 반영한 상무부 조치를 보조금 협정 위반으로 판정했다. 다만 수도권과밀억제권역 이외의 지역에 투자할 경우 세액을 공제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은 보조금협정이 금지하는 지역적 특정성이 존재하므로 이를 보조금으로 인정했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WTO 판정 결과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제동을 건 결정적 판결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KEA 관계자는 “우리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반덤핑 규제가 견제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동안 표적덤핑, 제로잉 기법을 적용받아 오던 철강 등 우리 주력 산업의 대미 수출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제소 주체인 한국 정부, 즉 산업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대미 세탁기 수출입 현황(단위:백만달러)>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