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주개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중국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첸쉐썬(1911~2009)이다.
그는 1935년 의화단 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장학금 지원을 받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캘리포니아공대에서 각각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따고 모교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로켓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를 위한 국방과학기술자문위 로켓 부문장까지 맡았다. 하지만 1950년 2월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 선풍으로 첸 교수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가택연금까지 당했다. 첸 교수의 가치를 잘 알고 있던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는 미국 정부와의 비밀 협상으로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은 미군 전투기 조종사 15명을 풀어 주는 대가로 첸 교수의 고국행을 성사시켰다. 첸 교수는 1955년 귀국한 뒤 미국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미사일, 로켓, 인공위성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1957년 10월 4일 당시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는 것을 보고 중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1958년 마오쩌둥은 인공위성 개발을 지시했고, 첸 교수의 주도로 1960년대 말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둥펑 4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1970년 4월 24일에는 둥펑 4호에 3단 로켓을 얹은 변형 로켓 창정 1호 개발에 성공한다. 창정 1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중국은 세계 다섯 번째 인공위성 발사국으로 우뚝 선다. 이후 우주항공 기술을 하나씩 확보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투자를 크게 확대했다.
1999년 11월 첫 우주선 선저우 1호를 시작으로 2001년 1월 2호, 2002년 3월과 12월에 3·4호를 각각 발사했다. 2003년 10월 15일 첫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 발사에 성공, 중국의 우주 영웅 양리웨이를 탄생시켰다. 선저우 5호의 무사 귀환은 중국 우주 개발 역사에 한 획을 그었고, 2008년에는 선저우 7호 우주인들이 우주 유영에도 성공했다. 2011년 11월에는 무인 우주선 선저우 8호가 첫 우주정거장 톈궁 1호와 처음으로 도킹에 성공, 중국은 사실상 우주 정거장 시대로 진입했다.
우주 굴기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현 지도부가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시 주석은 올해 4월 24일을 처음으로 국가항천일(航天日·우주일)로 지정하면서 `우주강국 건설`을 골자로 한 `우주의 꿈` 실현 목표를 공식 천명했다. 또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한 제13차 5개년계획`에도 해양, 우주, 인터넷 관련 국방 프로젝트를 포함시켜서 전면 육성하기로 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