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영란법이 복지부동 불러와서야…

국·공립대학 교수의 대외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공직자 외부 활동 규정이 강화된데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까지 시행되면서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여파는 국가 연구개발(R&D) 현장에 미치고 있다. 교수 전문가 그룹이 기획자문회의 참여를 꺼리면서 내년도 과제 기획이 지지부진하다. 연간 20조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는 국가 R&D 정책이 부실해질 위기에 놓인 셈이다. 우리나라 미래 경쟁력 확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애당초 예견된 청탁금지법의 부작용이 현실화하는 것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을 태우는 꼴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교수들의 대외활동 위축은 하나의 단면이다. 교수뿐만 아니라 공직자 전반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공무원들은 기업인은 물론이고 산하기관 관계자도 만나지 않으려는 형국이다. 직접 만나 정책을 논의하기보다는 서면 보고로 갈음하는 곳이 적지 않다. 행여 시범 케이스로 걸릴 수 있다며 암묵적으로 외부 관계자와 만남 자제를 권고하는 부처까지 생겼을 정도다.

이런 움직임이 지속되면 정부나 공공기관의 정책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산업 담당 공무원이 산업 현장과 교류하지 않으면서 과연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들끼리만 머리를 맞대 만든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다시 `탁상행정`이 남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부정청탁을 막는 긍정적인 효과를 살리면서도 공공 분야 위축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 당장 공직자 외부 활동을 제한하는 정책부터 손질할 필요가 있다. R&D 과제 기획이 한 번의 회의로 완성될 수 없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대외 활동 횟수와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공직사회의 대외 활동 위축을 막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적어도 공직사회에 만연한 대외활동 자제 분위기부터 바꿔야 한다.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대외활동 자제를 요구하기 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만날 것을 주문해야 한다. 청탁금지법은 부정청탁을 막는 법이다. 대외 활동을 막는 법이 아니다. 공직사회에 다시 복지부동이 만연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