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래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강의교수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추석연휴가 있어서 그런지 9월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이른 추석 때문인지 대학 캠퍼스의 가을은 어느 해보다 비정상적인 것 같다. 지난여름 지독한 혹서를 겪은 탓인지 단풍이 들기 전에 낙엽 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반팔, 반바지 차림의 학생들처럼 푸르기만 한 활엽수도 있다. 모 대학 홍보광고학과 가을학기 첫 강의는 학생들과 우리의 현재 라이프스타일과 정보탐색 트렌드를 기록하고, 점검해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우리의 정보활동이나 미디어접촉행태에서 심각한 편향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 스마트 모바일 폰에 중독되는 현상이다. 특히 대학생들은 아침6시 기상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스마트 폰을 끼고 있고, 몰입시간이 하루에 4~6시간, 말하자면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나에게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 현상이다.
핸드폰에 ‘스마트’라는 말이 붙은 것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우리의 사용기준으로 보면 아마도 폴더 폰이 터치 폰으로 바뀐 시점, 말하자면 국내에서는 2009년 말 애플의 아이폰이 핸드폰 시장을 뒤흔들며 통신시장 디바이스에 대표주자로 등장한 무렵이 아닐까 싶다. 집전화가 손으로 들어가고, 불과 몇 년 만에 통신수단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화가 가능하여 모바일 폰으로 전이되었다. 거기에 메시지 전송기능 정도가 부가될 때 까지만 해도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바일 폰에 웹과 앱이 장착되고, 인터넷이 옮겨가면서, 금융결재, 쇼핑, 지도검색, 내비게이션, 맛집 찾기, 시간예약 및 명함관리, 메모나 사진, 음악청취나 TV, 동영상 시청, SNS 등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스마트폰 몰입수준은 점점 더 높아졌다. 말 그대로 스마트 폰이 우리의 의식과 삶의 주인이 된 것이다.
2014년 5월 국내에도 개봉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The Her)’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새로 구입한 OS(Operating System) 사만다와 시스템 이상의 깊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사랑에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OS 사만다에게 맡기게 된다. 그녀는 그가 모르는 모든 것을 고려하여 지시하고, 통제하고, 안내하는 그만의 행복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광적 집착을 하게 된다. 그런데, 테오도르가 단 한번만 고개를 들어 거리를 바라보았다면, 혼자 중얼거리며 대화하는 사람들, 모두 이어폰을 끼고 ‘그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하루, 누군가의 또 누군가도 그처럼 복제된 OS의 또 다른 복제된 삶이란 것을 금방 깨달았을 터이다. 요즘 전철에서, 거리에서, 학교에서, 음식점에서, 심지어 집에서조차, 어느 장소에서 누굴 만나든 불과 3년 전의 ‘그녀’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닮아있다. 사람들은 모두 이어폰을 끼고 15도 정도 고개를 숙이고, 주변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고 그 작은 ‘스마트 폰’에 깊숙이 사랑에 빠져있다.
디지털 연구포럼에서 가끔 만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 홍진우 박사는 2012년 발간한 ‘훤히 보이는 스마트TV’라는 책에서 ICT에서 ‘스마트’한 것의 특징을 ‘똑.편.영.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똑똑하고, 편리하고, 영리하고, 재미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모바일 폰이 이제 이런 특성을 모두 갖추었으니 스마트 폰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디바이스(기기)는 자꾸 똑편영재 해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도 그만큼 똑편영재한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아내 폰번호 이외에는 기억하는 전화번호가 없다(과거에는 적어도 50개 정도의 전화번호를 습관적으로 외우고 있었음). 불필요한 연락은 ‘후후앱’이 막아주고, 스마트폰이 연락처 사전정보를 알려주며, 필요시 검색과 터치만 하면 원하는 사람과 바로 연결된다. 그 외에도 필요한 정보를 찾고, 전철시간을 알아보며, 만남의 약속장소를 정하고, 일정을 기록하며,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조차 스마트폰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외 많은 지인들의 소식은 수시로 열어보는 스마트폰의 SNS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똑편영재한가?
스마트폰의 진화, 발전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미 우리에게 초연결사회가 도래했다고 한다. ICT기술 발전이 IoT(Internet of Thing), IoE(Internet of Everything) 세상을 열고, 산업에 있어서는 제4의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기술의 진보와 사회의 진화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인간다운 사람’으로 자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의도적으로 자연이나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스마트 기기를 벗어난 인텔리전트한 사색과 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15도로 기울어진 현재의 생활에서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정도는 몸을 정상적으로 꼿꼿하게 세우고, 세상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하지 않을까. 진정 스마트한 인간적인 삶, ‘Beyond The Smart 15°’를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