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시장의 중심인 여의도가 급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내걸고 2013년부터 추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도입의 여파다. 제도 도입 이후 3년. 대우증권, 현대증권 등 자본 시장에 한 획을 긋던 증권사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대형사는 규모 경제 실현을 위한 확장, 중소형사는 전문성을 살리기 위한 특성화에 한창이다.
금융위가 지난 8월에 내놓은 `초대형 IB 육성 방안`은 자기자본 3조원, 4조원, 8조원 이상 증권사에게 단계별로 신규 업무를 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어음 발행, 종합금융투자계좌(IMA) 등 다양한 기업금융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 증권사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가 도입된 후부터 자본 확충에 본격 나서기 시작했다. 금융위는 2013년 제도 도입과 동시에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증권사에는 헤지펀드에 신용 공여와 주식 대여를 할 수 있는 프라임브로커(PBS) 업무와 기업신용공여(대출)를 허용, 대형화를 유도했다. 최근 들어 증권사 간 대형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이뤄진 것도 초대형 IB를 키우겠다는 정책 방향에 따른 것이다.
제도 도입 당시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의 자기자본 총계는 16조7000억원이었다. 도입 이후 4년 만에 자기자본 총계는 23조원까지 증가했다.
증권사들은 각자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동시에 M&A로 규모를 키웠다. NH투자증권은 2014년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 합병으로 지난 2분기 자기자본을 4조6000억원까지 늘렸다.
미래에셋증권은 오는 12월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와 통합할 경우 자기자본 규모가 7조8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증권업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증권사다. 업계는 미래에셋이 추가 자본 확충을 통해 8조원 이상으로 규모를 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증권을 인수한 KB투자증권도 4조원 이상으로 자기자본을 키우며 외국환 업무 등 업무 영역을 넓힐 가능성이 짙다. 자기자본 7000억원 수준이던 KB투자증권은 3조3000억원에 이르는 현대증권을 인수, 단번에 대형 증권사 반열에 올랐다.
지난 9월에는 신한금융투자도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올라섰다.
M&A에 적극 나서지 못한 대형사들은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4년 동안 자기자본이 각각 2000억원가량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삼성증권과 한투가 하이투자증권 등 매물로 나온 증권사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유상증자 등으로 자본 확충에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는 대형화에 먼저 나선 증권사의 시장 지위가 갈수록 공고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증권사의 대형화 목적이 자본력 기반 기업금융(IB) 부문 확대이기 때문이다.
안지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대형화의 가장 큰 기대 효과는 시장 지위 개선과 높은 이익 창출력 달성”이라면서 “국내 은행의 M&A 사례,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증권업의 구조 개편 사례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증권업은 상위권 대형사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편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