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캐스터 표나리는 방송국에 첫 출근하는 날 출입게이트 통과용 신분증을 잃어 버렸다. 순간 당황했지만 곧 신분증을 찍고 들어가는 한 남자 직원을 발견한 그녀. 경쾌한 배경 음악과 함께 잽싸게 남자 뒤를 밀치고 들어가 게이트를 통과한다. 밀려 넘어진 남자 직원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사이에 부끄러운 그녀는 출근하는 사람들 속으로 숨는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그런 거 아닌 척 하는 거예요. 피(표)나리씨.”
결국 코피까지 흘린 그에게 나중에 조용히 실토하는 표나리. 얼굴도 잘생긴 보도국 이화신 기자가 던진 멋진 말 한마디에 짝사랑에 빠진다. 최근 한 TV드라마 남·녀 주인공 첫 만남 장면이다.
드라마에서는 재밌고 가슴 설레는 상황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결코 괜찮지 않다. 주요 시설인 지상파 방송국 출입통제 체계에 구멍이 뚫린 사례다. 극 중에는 출입게이트 통과 때 직원들끼리 서로 본인 신분증을 대신 찍어 주거나 빌려주는 장면도 등장한다. 야밤에 술에 취해 무단으로 통과해도 제지 받지 않는다.
드라마를 뭐 그리 진지하게 따져 보느냐며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가볍게 넘어가는 이미지는 생각보다 강하게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출퇴근 시간에 까다롭게 적용되는 회사 보안 규정에 많은 사람이 불편을 느낀다. 심각한 보안 규정 위반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로맨틱하고 유쾌한 장면으로 덧씌워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소한 방심이 중대한 보안 사고로 이어진 실제 사례가 있었다. 출입증을 훔쳐 정부서울청사를 수차례 무단으로 드나들고, 합격자 명단까지 조작한 `공무원시험준비생` 사건이다. 출입통제 체계 강화와 얼굴인식 장비 도입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도입하고 체계를 정비해도 이를 적용받는 `사람`의 보안 의식이 미치지 못한다면 위험 요소가 된다.
드라마는 말 그대로 드라마일 뿐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에 담긴 가벼운 보안 의식은 아쉬운 대목이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