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재난망, 현실적 계획 필요하다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사업 완료가 2018년 이후로 늦춰진 만큼 현실에 맞는 계획이 필요하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사업의 완벽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대부분 시각이다.

그렇더라도 무턱대고 기간을 늦출 수 없다. 세월호 참사나 경주 지진처럼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물론 2018년 또는 2019년에는 마무리해야 한다.

결국 완벽성을 기하면서 2~3년 안에 사업을 완료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국민안전처와 재난망 구축기획단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슈분석]재난망, 현실적 계획 필요하다

◇사업 지연은 예정된 일

지난 6월 강원도 평창군에서 재난망 시연이 있었다.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동안 진행한 시범사업 결과를 공개했다. 시연은 무난히 끝났다. 하지만 본사업을 바로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범사업 결과 총 사업비 1조7000억원으로는 정보전략계획(ISP) 당시 예상한 전국 커버리지(89.5%)를 달성하기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7000억~8000억원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결과를 보고받은 청와대는 난색을 표했다. 외부에선 또다시 ISP 부실, 혈세 낭비 논란이 불거졌다.

재난망포럼 관계자는 26일 “재난망 구축기획단과 시범사업자인 KT, SK텔레콤은 시범사업을 통해 ISP와 실제 상황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본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과 방식의 사업 계획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안전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월 말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협의회를 구성했다. 검증협의회는 10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 활동했다. 안전처는 검증협의회가 도출한 결과물을 기획재정부에 전달, 계획과 예산 검증이 시작됐다.

지난해 ISP 이후 혈세 논란으로 시범사업이 바로 발주되지 못하면서 사업이 수개월 동안 지체됐다. 그리고 시범사업 결과 검증에 또다시 몇 달이 소요됐다. 검증협의회 결과물 검증까지 이어지면서 2017년 사업을 마무리하겠다는 안전처의 계획은 불가능해졌다. 사업 지연은 예정된 순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슈분석]재난망, 현실적 계획 필요하다

◇검증협의회, 현실 방법 찾았나

사업 지연의 근본 원인은 초기 계획 수립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한다. 1조7000억원 예산으로 자가망, 고정 기지국을 활용해 전국 커버리지를 100%로 만든다는 것은 현실상 불가능했다. 시범사업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커버리지 개념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인적이 전혀 없는 산지나 강, 호수 등을 모두 커버리지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상용망도 이런 지역은 커버리지에서 제외한다. ISP 커버리지 예상이 90% 가까이 나오고 시범사업 결과는 30~40%밖에 나오지 않자 커버리지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

검증협의회는 3개월 동안 예산은 늘리지 않으면서 전국 커버리지를 확보하는 방법 마련에 집중했다. 협의회는 고정 기지국이 필요 없는 지역은 상용망과 이동형 기지국 등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검증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게 비용과 커버리지인데 커버리지 확보를 위해 굳이 고정 기지국이 필요 없는 지역을 선정하는 작업을 벌였다”면서 “그 결과 상용망의 90% 수준 이상의 커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검증협의회가 도출한 계획과 예산 검증은 내년 초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사업은 지연되게 됐지만 현실에 맞고 기술상 손색이 없는 방법을 찾아 냈다는 게 협의회의 주장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늦더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기재부가 검증협의회 계획을 승인하고 목적예비비로 편성된 1차 본사업(확산사업) 예산 약 3000억원을 승인하면 내년도 상반기 본사업이 시작된다. 이후 2차 본사업(완료사업)은 내후년에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한 문제가 없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통신사 관계자는 “내년에 1차 본사업이 시작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반드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추진 체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이 늦어지면 장비 단가 인하, 표준 안정화 등 장점도 있다. 하지만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통신망이기 때문에 사업 지연에 따른 우려가 큰 게 사실이다. 우선 군과 경찰이 쓰는 노후화된 단말의 업그레이드 전략이 필요하다. 재난망 구축 완료까지 기존 통신망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전, 광주, 부산 등 5대 광역시 경찰은 2002년 도입한 단말을 14년째 사용한다. 주요 도시에서는 사람이 많이 밀집하는 집회 등 때 통신망이 잘 터지지 않는 경우도 잦다.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도 요구된다. 재난망은 2조원 가까운 규모로 추진되기 때문에 사업 참여를 노리는 중소기업이 많다. 단말, 칩, 솔루션 등 중소기업은 사업이 지연되면 경제 사정의 어려움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2012년 재난망 사업 참여를 위해 오랜 기간을 투자한 60여 개 중소기업이 사업이 표류하자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