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퀄컴이 470억달러(약 53조8000억원)라는 천문학 규모의 비용을 들여 NXP를 인수합병(M&A)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 반도체 업계 지형도가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퀄컴이 종합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하는 동시에 미래 유망 시장인 자동차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대폭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모바일 무선통신칩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켜 온 퀄컴은 자동차 칩 시장에서도 단숨에 1위에 오를 수 있게 됐다. NXP는 지난해 프리스케일반도체를 인수해 차량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 르네사스, 독일 인피니언을 누르고 1위로 도약했다. 앞으로 5세대(G) 통신 시장이 열리면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스티브 몰런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도 발표 성명에서 “이번 인수는 커넥티드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분야의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삼성전자가 모바일 칩 분야에서 퀄컴과 경쟁하고 있지만 이번 인수에 따른 직접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IoT와 차량 반도체 분야로 진출하려 한다면 덩치를 키운 퀄컴은 넘기 힘든 장벽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인수를 바라본 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이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성장판이 닫힌 기업이 많아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형 M&A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바고가 브로드컴, 인텔이 알테라, 소프트뱅크가 암(ARM)을 각각 인수한 것이 대표 사례다.
퀄컴은 이번 인수로 연간 5억달러 규모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했다. 다만 M&A로 업체 수가 축소되는 것은 후방산업계에 악영향이다. M&A 후 중복 사업과 인력 구조조정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퀄컴은 각국 규제 당국의 심사를 거쳐 내년 말 인수 작업이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 지역 법인의 엔지니어와 관리 인력은 구조조정의 태풍 속으로 휘말려들 가능성이 짙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주력 성장 산업의 바통이 모바일에서 자동차, IoT 분야로 넘어갔다는 시각도 나온다. 퀄컴의 NXP 인수 배경은 모바일 시장의 성장 한계를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퀄컴은 지난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칩 공급이 끊어지자 연간 매출이 역성장했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