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크로스오버 뮤지션 카이는 뮤지컬 배우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팬텀’, ‘삼총사’, ‘드라큘라’, ‘잭 더 리퍼’, ‘레드’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했고, 11월에는 ‘몬테크리스토’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성악을 전공하고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는 카이가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 배우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는 오페라와 클래식을 같은 맥락으로 봤기 때문이다. 음악과 드라마가 합쳐졌다는 점에서 뮤지컬과 성악(오페라)은 비슷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발성법 및 작품 소재, 레시타티브 유무 등에 따라 장르를 구분하고 있다.
“뮤지컬이 오페라나 클래식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페라도 연극에서 시작해 발전한 형태고, 그게 또 지금의 뮤지컬까지 넘어온 거니까요. 저는 뮤지컬 자체가 이 시대의 클래식이자 오페라라고 보고 있어요. 다만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정통 성악을 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연극배우 및 대중 가수 등 각자 다른 분야에서 모였다는 점 때문에 대중이 오페라보다 뮤지컬을 좀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정통 연기를 배운 게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뮤지컬계에서 좋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에 도전 중인 후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배우로는 정택운을 꼽았다. 아이돌 그룹 빅스 멤버 레오로 더 유명한 그는 ‘몬테크리스토’에서 알버트 역을 맡아 카이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한 명을 꼽아서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후배들이 뛰어나지만 택운이가 눈에 많이 들어와요. 연기나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게 아니기 때문에 부족함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저는 뮤지컬에 도전하는 아이돌 친구들을 무시하지 않아요. 인기 아이돌이라고 해서 거드름 피우지도 않고 연습을 실전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정말 멋지고 예뻐 보이거든요. 항간에는 아이돌들이 뮤지컬 배역을 장악하는 것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지만 저는 열정적이고 실력 있는 친구들이 더 많이 참여해서 뮤지컬이 더 부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카이가 처음 봤던 뮤지컬은 ‘명성황후’였다. 이 작품을 관람하고 난 후 카이의 마음속에는 뮤지컬의 꿈이 깊숙하게 새겨졌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 형편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하루는 음악 선생님을 하셨던 어머니가 봐야할 게 있다면서 어린 저를 예술의 전당에 데려가주셨어요. 그때 돈이 없으셨는지 표를 한 장 사서 본인은 로비에서 기다리시고, 저한테 들어가라기에 혼자 공연을 보게 됐죠. 그때 봤던 공연이 ‘명성황후’였는데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 이런 공연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고, 나중에 제가 커서 꼭 뮤지컬을 해봐야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까 만약 제가 그때 그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위치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토대로 현재 ‘뮤드림’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뮤드림’은 뮤지컬 작품 한 편을 할 때마다 자비로 티켓을 구입해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뮤지컬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다.
“저는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 뮤지컬을 처음 볼 수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뮤지컬 한 편 본다는 건 경제적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과거 저와 비슷한 여건의 아이들이 작품을 하나 봐서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게 되거나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다가 ‘뮤드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똑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20대 때 보는 것과 10대 때 보는 건 완전히 다르거든요. 초대권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지만 그건 정당하지 못하다 생각해서 제 돈으로 표를 구입하게 됐죠. 아이들이 감동을 받아 뮤지컬 배우의 꿈을 꾸는 건 아니더라도 추억 하나는 심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변에 자문을 구해 형편이 어려운 보육원 아이들 10명 정도를 매 작품마다 초대해서 보여주고, 배우들과도 함께 사진 찍는 시간을 ‘뮤드림’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질적으로 향상되고, 제가 조승우 선배처럼 영향력 가진 뮤지컬 배우가 된다면 극장을 통째로 빌린 다음, 표 수백 장을 구입해서 소외 계층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카이는 자신의 전공 클래식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갈수록 클래식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는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끔 클래식 음악을 하는 분들이 클래식을 대중화시킨다면서 음악을 변질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클래식을 살리고 싶은 그분들의 시도는 높게 평가하지만 그건 시대성을 논하면서 다보탑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격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의 인기가 부진하다고 해서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본질을 지켜야 한다고 봐요.”
지난 2일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던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클래식과 오페라의 위기에 대해 “(클래식과 오페라는)인간의 감정을 농밀하게 담아낸 장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카이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말을 했는지 이해하면서도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강조했다.
“오래됐다고 해서 영원하지는 않아요. 다보탑이 만들어진지는 수천 년이 흘렀지만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나면 다보탑은 무너지거든요. 문화유산이 약하면 보수작업을 하고, 아이들에게는 역사 교육을 통해 얼마나 숭고한지 인식시키면서 왜 아름답고 가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업이 동반돼야만 다보탑이든 숭례문이든 가치가 있거든요. 그런 소중한 것들을 잘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군가 불을 질렀을 때 그게 천 년이 됐건 만 년이 됐건 하루아침에 없어져요. 시간이 흘러 고고학자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얘기해봤자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지는 않을 거예요. 클래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카이는 팬들에게 고마움이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제 노래 ‘모두 사랑인 걸’처럼 팬 분들은 모두 사랑이에요. 항상 서로의 모든 걸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최민영 기자 meanzerochoi@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