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그룹 비원에이포(B1A4)에서 프로듀서, 연기까지 다방면의 영역을 소화하고 있는 진영은 열심히 할뿐만 아니라, 잘 한다. 진영이 이렇게 훌쩍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실력, 좋은 소속사, 아니면 운? 그 무엇보다 진영의 긍정적인 열정 때문은 아닐까.
최근 서울 마포구 WM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종영 인터뷰를 위해 진영과 만났다. 깔끔한 올블랙 패션이었던 진영은 옷차림만큼이나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와의 대화는 햇살 같았다. 따뜻한 빛줄기처럼 자상하면서 포근했으며 때로는 사근사근하고 경쾌했다.
◇ 진영과 김윤성, 모두 설렌다
진영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며 귀티가 흐르고 여유 넘치는 명문가 자제 김윤성을 연기했다. 윤성은 장난기 넘치면서도 단호했고, 신경 안 쓰는 듯 하면서도 모든 상황을 꿰뚫어 봤다. 진영의 모습과 꼭 닮은 캐릭터였다.
“감독님께서 제가 ‘프로듀스 101’에 나온 걸 보셨는데 거기서 자상해보였다고 하셨어요. 윤성 캐릭터를 너의 모습대로 해도 좋을 것 같다면서요. 또 첫 대본리딩을 하는데 캐치가 빠르다고 하셨어요. 현장에 따라 빨리빨리 연기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요. 아마 프로듀서로 활동해서 그런가 봐요.”
진영은 캐스팅 후일담을 늘어놓다가, 문득 자기 입으로 자신의 칭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베시시 미소를 짓는 진영의 모습은 아직 윤성인 것 같기도 하고, 윤성 같은 모습이 진영 같기도 했다.
“윤성이는 극중 나이가 19살이라 장난스러운 매력도 있어서 남장한 라온이(김유정 분)가 여자인 걸 알면서 장난을 치는데 그런 장면이 참 귀여웠어요. 그 나이에 맞지 않게 여유 있어서 능글맞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성격은 시간이 가면서 변하는데, 처음에는 통통 튀었다면 점점 사랑에 진지하게 바뀌며 배려하는 남자로 바뀐 것 같아요.”
윤성은 라온에게 마음을 뺏기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휘말리고 결국 라온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한다. 이영(박보검 분)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도 오로지 라온만 바라보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켰다.
“죽는 결말, 전 괜찮았어요. 다들 윤성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시는데, 윤성이 입장이라면 삶의 의욕도 재미도 못 느끼다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인이 생긴 거예요. 할아버지 말도 안 듣고 모든 걸 포기할 만큼요.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를 지켜주며 죽는 거니 여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윤성의 마지막 선물인 거죠.
그래서 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슬퍼하면서 죽으면 라온이는 상처를 입고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니까요. 극중에서도 제가 칼을 맞고 라온이가 의원을 부르러 가는데, 제가 막아요. 살아갈 의지가 없는 거죠. 상처를 보고 놀랄까봐 손으로 가리고요.“
드라마에서 윤성이 숨을 거두며 했던 첫 대사는 “울지 말아라, 나는 당신의 시시한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다. 아프지 않은 척 웃으며 말한다. 윤성은 생각보다 훨씬 배려 깊은 순애보였으며, 진영은 그런 윤성을 완성해낸 장본인이다. 캐릭터의 속마음까지 분석한 진영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 ‘구르미’ 통해 두둑해진 배짱
의외로 진영은 자신이 윤성의 입장이라면 살려고 노력했을 것 같단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으면 살아서 봐야하니까”라고 이유를 댔다. 윤성이 겪은 사랑도 비슷하게 해봤고, 사랑할 때만큼은 최선을 다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려고 노력한단다. 지금껏 짝사랑하는 역할만 해온 진영에게서 범상치 않은 사랑꾼 냄새가 느껴진다.
자칫하면 연기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기에 신경 쓰이지 않냐고 묻자, 진영은 “짝사랑 역할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데 지금껏 이런 캐릭터에 대해 잘 알았으니 이제 다른 역할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진영은 그간 영화 ‘수상한 그녀’,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 ‘맨도롱 또똣’ 등을 통해 차근차근 연기력을 다져왔다. 그리고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 아이돌 출신 연기자를 둘러싼 편견을 완벽하게 깼다. 비단 드라마의 훌륭한 시청률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이 잘되면서 오히려 더 배짱이 생겼어요. 많은 사람들이 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연기를 하니,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싶었어요. ‘못하면 큰일 나는데’하는 조바심이 아니라, ‘이번에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자’ 했어요.”
은근한 뚝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불안해하며 당장 앞에 닥친 평가에 급급해하지 않고, 연기자로서 멀리 걸어가기 위해 역할에 집중했다.
비원에이포 멤버들도 진영이 힘을 내는데 한몫했다. 멤버들은 다소 오글거리는 멘트가 많았던 진영의 대사를 따라하고 놀리는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영을 응원했고, 진영의 성과를 높이 사며 칭찬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제 이름이 올라올 때 비원에이포 이름도 같이 올라오는데 ‘아, 혼자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어요. 이번 드라마를 통해 팀도 많이 알린 것 같아요. 제가 자부할 수 있는 건 애들이 정말 착하다는 거예요. 알아서들 잘 해서 제가 리더로서 할 게 많이 없어요. 참 고마워요.”
비원에이포 이야기가 나오자 진영은 더욱 진지해졌다. ‘착하다’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진짜, 진심임을 강조했다. 진영은 멤버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근황도 나누고 칭찬 혹은 조언도 주고받았다고 한다.
◇ “인생 뭐 있어요?”...지금의 진영 만든 한 마디
진영은 비원에이포를 보면 편안하면서도 들뜨고 설렌다며 “집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며 눈코 뜰 새 없는 진영에게 멤버들은 안식처이자 힘의 근원지였다. 비원에이포의 기운을 받아 진영은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나아간다.
“제가 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까 더 하고 싶어 해요. 드라마를 하고 있더라고 곡 의뢰가 들어오면, ‘내가 잠 덜 자고 시간을 쪼개면 되지’하는 생각에 하겠다고 해요. 싫어하는 일이라면 지칠 수 있지만, 제가 하는 일들은 꿈꿔왔던 것이고 즐거우니까요. 어렸을 때 연기가 하고 싶어 서울에 올라와 오디션을 다니면서도 정말 행복했어요.”
올해 스물여섯 살이 된 진영은 참 성숙했고,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은 진영은 겸손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인생을 배워서 그런 것일까. 실제로 진영과 친한 주변인들의 나이대가 40대 형들이라고 한다.
“다들 프로듀서 분들, 기사 분들인데, 술 한 잔 할 때 저를 껴주세요. 저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위화감이 없다고, 나이 속인 거 아니냐고들 하세요. (웃음) 많은 말씀을 들어서 겪어보지 못한 것도 한 번씩 경험하는 느낌이에요.”
그러면서 진영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던 일화 하나를 털어놨다. 첫 타이틀곡을 쓸 때 믹싱만 일곱 번을 했단다. 열정은 있었지만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다보니 계속해서 수정을 거듭한 것이다.
진영은 그때부터 무슨 말이든 50%만 수용하자고 다짐했다. 좋은 말도, 나쁜 말도 정답이 아닐 수 있으니 반만 믿는 거다. 악플을 봐도 ‘그 사람만을 위해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대중을 보고 하는 거니까’라고 넘기며 상처를 많이 받지 않는다.
“팬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 중 하나가 ‘긍정보이’에요. 긍정적인 생각이 많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 그렇지 않았는데, 스트레스 받으니 될 일도 안 되고 힘든 거예요. 이걸 어떻게 극복할까 하다가,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니 덜 힘들더라고요. 제가 주변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인생 뭐 있어요?’에요. 그 말을 함으로써 마음이 편해지는 게 있어요.”
진영의 입술을 통해 나온 ‘인생 뭐 있어요?’는 책임을 내려놓지도, 골치 아프게 얽매이지도 않은 참 멋진 말이었다. 진영은 지레 겁먹지도 않고 섣불리 주눅 들지도 않는다.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소희 기자 lshsh324@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