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136>지도자의 그릇

[이강태의 IT경영 한수]<136>지도자의 그릇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말했다. “나는 장량, 소하, 한신의 세 사람보다 능력이 모자랐지만 이 세 사람을 능히 부릴 줄 알았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역사상 큰일을 한 사람들을 보면 항상 능력 있는 참모나 부하나 제자가 있었다. 국가 지도자도 그랬고 종교 지도자도 그랬고 정치가도 그랬고,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큰일을 이룬 사람들은 사람을 볼 줄 알았다. 사람의 능력을 간파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 이들의 내적 동기를 극대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가 따르는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도록 했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러한 철저한 자기 수련이 축적돼 인간적 향기를 뿜어내도록 했다. 그래서 아랫사람은 이런 분을 위해 평생을 상사로 모시고, 그분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아랫사람을 따르게 하는 인간적인 매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혜안과 실행력이다. 혜안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자기 수련으로 갖춰진다. 실행력은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으로 쌓여져 간다. 극한의 고난과 처절한 고통 속에서 내적으로 강하게 뭉쳐진 힘을 바탕으로 혜안이 쌓이고 실행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밝은 혜안과 철저한 실행력을 보면서 저절로 인간적인 깊이와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지 하는 분발심과 존경심이 생기게 된다.

아랫사람을 인간적인 감화가 아닌 권위, 권세, 지연, 혈연, 학연으로 부리면 꼭 뒤탈이 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위, 권세, 세속적인 관계를 앞세운 위엄이나 강요는 오래 가지도 못했고 성공하지도 못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지만 뒤에서는 이게 아닌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러다가 권세가 꺾이면 그렇게 양순하던 아랫사람이 자기 등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그런 사례를 우리가 주위에서 한두 번 보았는가.

조직에서 성공하는 지도자는 자기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주위에 더 똑똑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기 위해 지도자는 스스로를 냉철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공부, 즉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사람 공부`는 꼭 서재나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매일매일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관찰하고, 잘되는 사람과 잘못되는 사람의 사례를 보면서 스스로 사람 보는 법을 길러야 한다. 우리가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왜 공부하는가.

자기가 부족한 것을 아는 사람은 남의 얘기를 듣는다. 잘 모르는데 남의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듣기 편한 얘기만 듣느냐 듣기 싫은 얘기도 듣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다르다. 평소에 인격 수양과 수신제가가 된 사람은 자기에게 조언하는 사람의 진면목을 볼 줄 알고, 듣기 싫은 얘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듣는다. 그런 사람은 능히 유능한 인재를 끌어 모을 수 있고,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조직과 국가와 세상에 이로움을 줄 수 있다.

국가나 기업이나 지도자의 그릇만큼 성장한다. 젊었을 때 자기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사람, 평소에도 인격 수양을 열심히 한 사람, 수신제가를 제대로 한 사람이 큰 사업이나 큰일을 할 수 있다. 자기 그릇보다 더 큰 자리를 맡으면 그 자리의 위세만큼 주위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고, 결국 역사에 씻지 못할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작금의 실망과 분노와 허탈함을 빨리 수습해서 밝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갔으면 한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달래 줄 진정한 지도자의 출현이 중요하다. 그 지도자는 그동안 인격 수양과 수신제가를 제대로 해 온 사람이면 참 좋겠다. 주위에서 돕는 사람도 잘되면 한 자리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잘되면 표표히 떠나겠다고 하는 멸사봉공의 마음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지금 나서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