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옷을 입은 마네킹을 즐비하게 세워 놓고 고객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친절을 강조하는 곳이 백화점이지만 실제로 업의 본질은 서비스가 아니고 부동산업이다.
정교한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찍어 내는 반도체 역시 업의 본질은 조립 양산이 아닌 시간 산업이라고 한다.
갤럭시와 아이폰의 경쟁 양상에서 보듯 고객들이 큰돈을 지불할 정도로 매력을 끄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서 먼저 발표해야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처럼 연구개발(R&D)의 본질은 시간을 다투는 혁신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빠르게 변하는 세계 시장에 맞춰 R&D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혁신을 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06년부터 사용자가 참여하는 R&D 리빙랩(일상생활에 연구 결과를 반영하는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용 전동 휠체어에 조이스틱을 탑재하거나 TV 시청 데이터를 활용해 독거노인을 보살피는 등 현재 300개가 넘는 리빙랩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자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 당사자가 참여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면서 기술들을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도 9년 전부터 신에너지개발계획국(ARPA-E)을 설립해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을 제어, 에너지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위험성은 높지만 배터리 가격의 경제성 확보, 바다를 이용한 해양농장, 이산화탄소 사용 및 저장 등 기대 효과가 큰 분야에서 기초부터 상업화까지 융통성 발휘해 혁신을 이끌고 있다.
R&D 투자는 저축과 같다. 지금 당장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느라 저축하지 않는다면 정작 필요할 때 가용할 수 없게 된다. 최근 50달러 아래의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R&D 투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시간 산업인 R&D는 `장롱 특허`와 같은 쓸모없는 기술만 남기게 될지 모른다.
우리나라 해상풍력은 기술상의 한계와 수용성 문제로 5년이 늦어졌다. 2010년 서남해 해상풍력 로드맵 발표 이후 2014년 실증단지가 완공 예정이었으나 군사 레이더 교란과 지역 수용성 문제로 지연돼 2017년 3월에야 겨우 착공될 예정이다. 반면에 `2016 영국에너지 통계`에 따르면 영국은 지난해 전력의 25%를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가량(48%)을 풍력으로 생산했다. 영국 전력 생산의 약 8분의 1을 바람이 책임지고 있다.
R&D는 긴 호흡으로 파급 효과가 큰 핵심 기술을 혁신하는 과정이다. 특히 에너지 R&D는 전 세계의 기후변화 대응과 차세대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초미의 관심 대상이다. 이산화탄소 발생을 감축하거나 거꾸로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는 기술, 기존 전력망과 독립해 송전탑 없이 전기를 자체 생산하는 기술 등 앞으로 개발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로, 지금 당장 어렵다고 R&D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극복할 수 없는 시간차를 겪을 수 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꾸준한 R&D 투자로 혁신의 답을 찾아야 한다.
방대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기술개발본부장 bang@ke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