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분기에 정제 마진이 급락, 정유업계 주력인 석유 사업의 실적이 곤두박칠졌다. 8월에 복합 정제 마진이 배럴당 2~3달러를 오가면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업계 석유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2분기에 10%를 안팎을 오갈 정도로 좋았지만 3분기에는 1~4%를 오갔다. 주력 사업의 부진에도 예상보다 괜찮은 실적을 거둔 것은 석유화학, 윤활유 등 비정유 사업의 선방 덕분이었다. 정유업계는 과거 고도화 투자를 마치고 석유화학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뭉칫돈을 풀었다. 연관성이 크면서도 시황에 영향을 다소 덜 받는 비정유 사업이 뒤를 받치는 구조다. 국제유가, 정제 마진이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이면서 정유 사업의 실적 변동성이 커진 데 따른 대응이다. 정유사 올해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10% 이상이다. 석유화학 사업의 분기별 이익률을 보면 SK이노베이션 11.4~15.4%, GS칼텍스 11.1~12.3%, 에쓰오일 22.0~22.7%다.
비중이 가장 높은 제품은 파라자일렌(PX)이다.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나프타를 재가공, PX와 방향족 석유화학제품(벤젠·톨루엔·혼합자일렌)으로 가공한다. PX 시황은 몇 년 만에 초강세다. 중국 국영석유회사 시노펙 계열의 금릉석화 화재로 공급이 줄었고, 지난해 초 큰 화재를 본 중국 최대 PX 설비인 드래곤아로마틱스의 가동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일본에서도 지진 여파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PX가 원료인 PTA의 올해 중국 수요는 약 3380만톤으로 추산된다. 약 2231만톤의 PX가 필요하지만 PX 자급률은 60%에 불과하다. 부족한 물량 1100만톤은 수입에 의존한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대중국 PX 수출량은 전년 대비 42.2% 증가한 536만톤, 올해는 585만톤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실제 수출 물량은 더욱 늘어난 것으로 업계는 추산했다. 중국은 PX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정유설비 신·증설이 급격히 줄면서 내년까지 예정된 PX공장 증설이 한 건도 없어 당분간 수혜가 이어질 전망이다. 윤활유·윤활기유는 부가가치가 더 높다. 분기별 영업이익률은 SK이노베이션 19.5~21.2%, GS칼텍스 24.9~27.7%, 에쓰오일 30.3~39.2%에 이른다.
정유 4사는 비정유사업 역량 강화에 최근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제품 최대 수요국인 중국의 현지 합작 사업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SK종합화학은 시노펙과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합작한 화학회사 `상하이 세코` BP 지분(50%)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노펙과 중국 우한에 나프타분해설비(NCC) 합작 공장 건설과 더불어 중국 현지 화학 사업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에쓰오일은 약 5조원을 투자해 잔사유 고도화 설비, 올레핀 다운스트림 생산 설비를 짓고 있다. 벙커C유를 다시 한 번 정제해 가치가 높은 휘발유, 프로필렌, 산화프로필렌을 생산한다.
현대오일뱅크도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 나선다. 롯데케미칼과 합작한 현대케미칼이 이달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현대케미칼은 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50% 출자한 회사로, 초경질유(콘덴세이트)를 분해해 납사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20년까지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 비중을 30%까지 늘릴 계획이다.
GS칼텍스는 PX 신규 투자 시기를 여전히 조율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바이오부탄올 사업에 진출한다. 500억원을 투자, 내년 하반기까지 바이오부탄올 데모플랜트 건설을 마칠 계획이다. 바이오부탄올은 폐목재나 폐농작물을 활용해 만든 코팅제, 페인트, 접착제, 잉크, 용제 등의 원료다.
정유사 관계자는 14일 “정유업계가 과거 고도화 투자를 마치고 지금은 석유화학 사업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는 것이 큰 흐름”이라면서 “정유 사업은 외부 환경에 따라 시황이 급격히 흔들리는 반면에 비정유 사업은 시황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다운 스트림으로 갈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서 앞으로 투자가 더욱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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