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다르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출되고 난 뒤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의 변명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여론·출구 조사가 다 틀렸으니 이제는 변명하고 반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예상이 틀어진 거는 또 하나 있다. 당선인 트럼프의 말과 행동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그 트럼프가 아닌 것 같다. 막말을 일삼고 여성 비하, 편력이 화려한 트럼프에게서 벌써 자신감 넘치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S대 철학과 교수에게 트럼프 당선의 철학적 해석을 부탁했다. 두 가지 답변을 했다. 하나는 중국의 시진핑, 영국의 테리사 메이,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일본의 아베 신조, 미국의 트럼프로 이어지는 새로운 타입의 지도자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마초 타입의 강인함, 거친 언사, 선민의식, 자국 경제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또 하나는 이들은 기존의 관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국가와 국가 간, 국가와 국민 간 관계를 새롭게 하려 하고 있다. 인류 공영보다는 자국 중심, 집단에서 개별, 수직에서 수평, 이념에서 실리로 각각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임자들의 기존 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대학원생 한 명이 6개월 전부터 줄곧 트럼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단다. 그래서 선거 결과가 나오고 난 뒤 그 학생을 불러서 너는 무슨 근거로 트럼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고, 자기 눈에는 트럼프가 되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고 대답했단다. 이 대학원생은 탈북자였다.
이 교수의 설명을 듣고 보니 트럼프의 당선 배경이 평소에 제4차 산업혁명 특성을 얘기하던 것과 똑같았다. 수평에서 수직, 실물에서 가상, 집중에서 분산, 대기업에서 스타트업, 재벌 경영에서 플랫폼 경영으로 각각 바뀌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렇듯 우리의 삶과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파워 이동(Power Shift)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본래 변화에 무딘 경우를 얘기할 때 냄비 속 개구리를 인용한다. 서서히 변하면 그 변화를 눈치채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가 분명히 우리 주변에서, 그것도 국제적으로 일관되게 일어나고 있는데 애써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는 데에서 문제가 있다. 언젠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어쩔 수 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때 큰 충격과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은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은 투표소와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가족·직장·취미·여가라는 자신만의 작은 울타리 속으로 기어들어 가게 한다.
트럼프든 힐러리 클린턴이든 우리가 오해는 하지 말자. 그들은 그들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말로 어떻게 말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힐러리가 되면 우리한테 유리하고, 전통 우방인 한국을 위해 자국의 이익을 양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또 하나의 희망 오류(Miswanting)다.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인물에 대해 우리는 지금 그저 놀라면서 여기저기 겨우 인맥 찾기를 하는 수준이다. 그럴수록 더욱 더 밖으로 눈을 돌려서 변화를 면밀하게 살피고 우리의 대응 전략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지금의 변화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구한말에 일본은 유신을 해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인 반면에 우리는 쇄국정치를 하다가 결국 나라를 빼앗긴 쓰라린 역사가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서 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전혀 다른 관점, 이제까지 제도권에서 해 오지 않은 방식으로 현재의 변화를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기존의 관점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트럼프의 당선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는 마치 탈북자와 같이 기존과 전혀 다른 관점으로 현재의 변화를 보고 미래를 예측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의 현 사태에 대한 해답도 나오지 않을까.
CIO포럼 명예회장(명지대 교수) kt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