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분산시대, 정부는 준비됐나

금융업계가 바쁘게 블록체인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기존의 전자금융 관련 법 체계가 중앙전산망을 전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가상화폐 `비트코인(Bitcoin)`의 거래를 위해 탄생한 기술이다. 기존의 중앙집중식 시스템과 달리 거래 정보를 기록한 원장을 특정 기관의 중앙 서버가 아닌 개인간(P2P) 네트워크에 분산시켜서 참가자가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미 지난해 말 기준으로 비트코인 시가 총액은 63억달러(약 7조4000억원) 규모로 늘었다. 라이트코인(Litecoin), 대시(Dash) 등 디지털통화 종류만도 670여개에 이른다.

디지털통화가 급격히 늘자 금융 당국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관계 부처와 공동으로 지난 17일 디지털통화 전담반(TF)을 구성하고 논의에 들어갔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22일 “금융결제원, 한국예탁결제원이 보유한 중앙 청산 기능을 어떻게 재분배할 것이냐에 관한 논의 없이는 블록체인 도입 확산에 한계가 있다”면서 “2018년부터 도입되는 전자증권법도 여전히 중앙 기관을 남기고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에 따르면 중앙 발행 기관과 청산소를 남겨둔 채 법정통화와 1대 1로 교환 가능한 전자화폐는 디지털통화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금전 가치가 전자 형태로 저장되고 공인 기관이 발행하지 않는 화폐만을 디지털통화로 규정한다. 증권 시장에서도 실물 증권 발행이 없는 디지털증권 도입 등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블록체인 관련 논의도 마찬가지다. 디지털통화와 관련한 정부 입장이 구체화해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별 은행과 카드사, 증권사들이 먼저 장외 결제와 그룹 내 결제 등에 블록체인을 우선 도입하기로 한 것도 정부의 더딘 움직임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우선 나서야 할 부분은 기업들이 스스로 신기술을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해소하는 것”이라면서 “개별 기업의 금융 서비스 도입에 신경 쓰기보다는 근거 법 마련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을 둘러싼 다양한 혁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면서 “관련된 모든 법규를 분산형 원장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을 담을 수 있도록 전면 개정하는 것이 좋을지 근본으로 법 체계를 `원칙 중심`으로 변경할 것인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권이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률 이슈에 대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