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을 예술처럼 해야 한다는 경영예술론이 등장했다.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주창자(主唱者)다. 그는 경영에 예술을 접목시킨, 이른바 경영예술이 미래 경영의 새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를 10일 오후 이화여대 신세계관 435호실에서 만났다.
그는 “과학 및 논리 방식의 경영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그 대안이 노동이 아닌 예술 활동을 하듯 경영에 예술을 접목시킨 경영예술”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예술 내용이 궁금하다.
▲예술가는 다수가 가난하다. 소득 분포로 따지면 하위권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상위 5위 이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신의 창작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을 따라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을 보면 소비자들이 감동한다. 그들은 세상에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 유명가수나 배우를 보면 열광팬인 팬덤(Fandom)이 있다. 팬은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구입한다. 이런 예술 원리를 경영에 도입한 것이다. 일을 노동이 아닌 예술처럼 하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영예술은 경영의 새 패러다임이다.
-경영예술론은 언제부터 연구했나.
▲3년 전부터다. 경영학과 인연을 맺은 지 35년이고, 이후 교수로서 학생을 지도했지만 그동안 이런 점을 간과했다. 나는 40년 넘게 음악 활동을 했다. 가곡을 작사·작곡해 발표한 곡만 20곡이다. 앨범도 3집을 냈다. 곧 4집을 발표한다. 경영학과 교수로서 음악을 하면서 경영에 예술을 접목시키는 경영예술 연구를 시작했다. 이달 초 국내 최초로 경영예술론을 발표했다.
김 교수실에는 미국 유학 시절에 구입한 오래된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다. 착상이 떠오르면 즉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작사·작곡을 한다고 했다.
-과학경영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현대 경영학의 효시는 테일러의 과학경영론이다. 모든 걸 측정해서 숫자로 정해 관리하는 것이다. 기업은 모든 걸 이런 식으로 경영한다. 이런 경영은 특징이 있다. 모든 걸 숫자로 측정하고 원인의 행위를 찾는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분석하고 논리화해서 해답을 찾는다. 사람과 재료 등은 관리 대상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직원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숫자로 측정해 관리하고 성과를 평가한다. 이 같은 계산 및 전략 방식의 경영은 한계에 왔다. 더 이상 창의와 혁신은 불가능하다.
-왜 그런가.
▲경영 방식 때문이다. 동양철학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처럼 사람을 소중한 존재로 본다. 반면에 서양은 사람을 도구로 인식한다. 철학의 충돌이다. 한국 기업 1세대인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자,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자는 한학을 공부해서인지 사람을 귀하게 여겼다. 그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예술가의 직관과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2세 경영인은 미국식 과학 관리론을 배웠다. 그들은 측정하고 분석하는 과학경영을 한다. 인력도 필요할 때 뽑고, 필요 없으면 해고한다. 이런 경영을 하면 세상에 없는 혁신 기술이나 제품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경영예술은 왜 창조경영인가.
▲예술에는 모방이나 짝퉁이 없다. 예술은 창의성과 독창성이 생명이다. 자기만의 특성과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이것을 중하게 여긴다. 기업도 그래야 재도약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성장했다. 남을 따라가면 이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거나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 애플은 남들이 못 만드는 신제품 또는 세상에 없는 것을 선보인다. 만약 직원이 제품을 예술작품처럼 만들고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한다면 소비자는 감동을 받을 것이다. 기업 경영을 예술로 승화시키면 그게 바로 경영예술이고 창조경영이 아니겠는가.
-경영예술은 어떻게 실천하는가.
▲창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체성과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감수성을 높이려면 먼저 시각(視覺)을 달리해야 한다.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다음은 상대 입장에서 빙의(憑依)가 돼야 한다. 왜 상대가 그런 말을 하는지, 느낌을 갖는지를 상대 입장에서 파악하는 일이다. 이와 더불어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없으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이런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이제는 기업 CEO가 관점을 바꿔서 기업 경영을 예술 작품 만들 듯 예술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술을 경영에 적용하면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가.
▲예술가는 소비자를 팬으로 만든다. 그들은 생활이 궁핍해도 최선을 다해서 자기만의 독창성 강한 작품을 만든다. 직장인의 행복도 자체 조사 결과 50% 이하가 `헬 직장`이라고 했다. 이런 직장인의 의식을 바꾸면 일하는 철학과 자세가 바뀔 것이다. 자긍심을 갖고 정체성을 확보하고 손님 욕구를 파악해 서비스를 혁신하면 손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혼을 담는다. 직원들이 예술가처럼 일한다면 업무는 자아를 실현하는 창작 활동이고, 그만큼 열성을 다할 것이다.
-기업에 실제 적용했는가.
▲소프트웨어(SW) 업체 날리지큐브(대표 김학훈)에서 7개월 동안 경영예술을 시범 적용했다. 이런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었더니 단순히 SW만 만들어서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한 SW라는 개념으로 변했다. 경영예술의 첫 성공 사례다. 지난해 컨설팅을 하고 이어서 7개월 동안 경영예술을 도입, 운영했다. 이달 1일 직원 의식과 행동이 변한 성공 사례를 발표했다.
-기업에서는 어떤 식으로 도입해야 하는가.
▲CEO의 결단이 필요하다. 한 부서 또는 작은 프로젝트를 시범 사업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 확대하면 된다. CEO가 월급을 더 주지 않아도 신명나게 일하는 회사 분위기를 만들고, 직원 근무 평가도 기존의 정량 항목에서 예술성을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윤 추구 기업이 행복 추구 기업으로 변할 것이다.
-경영예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창조경영이다. 경영예술론은 미래 경영의 모델이다. 앞으로 기업은 윤리경영, 과학경영, 예술경영을 해야 한다.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는 한국 최초의 경영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경영예술의 관건은 무엇인가.
▲CEO 철학이 관건이다. 직원이 예술가처럼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예술가는 자기 이름을 걸고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술가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일을 할 수 있는 경영을 해야 한다. 장인은 역사에 남을 작품을 만드는 게 평생 과업이다. 예술가는 장인정신과 선비정신에 맞닿아 있다.
-신지식인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가.
▲그렇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민보고대회에서 처음 신지식인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랬더니 김대중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신지식인 운동을 하라”고 지시, 전국에서 이 운동이 벌어졌다. 그로 인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의원으로 활동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두 가지다. 손님을 감동시키는 신제품 개발 방법론과 과거에 최적화한 조직을 경영예술을 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드는 조직변화 방법론을 연구할 생각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생명력이 피어나야 한다`이다. 우주만물 법칙이다. 자기 안에 있는 생명력이 피어나야 한다. 만약 억압을 받는다면 그건 우주원리에 반하는 일이다. 취미는 음악이다. 어릴 때부터 시를 썼고, 음악이 좋았다.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음악은 취미로 하라`는 부모님의 간곡한 말씀에 따라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인 1981년에 제1회 MBC 가곡제에서 작사·작곡한 `눈`으로 대상을 받았다. 2008년에 부모님 추도곡으로 발표한 `내 영혼 바람 되어`는 세월호 추도곡으로 널리 불린다. 강의도 예술이고, 학생들은 내 팬이라고 생각한다. 이화여대 지식연구센터란 명칭도 이화여대 연구놀터로 변경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피츠버그대 MBA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기획처장, 국제교류처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정보통신연구소장, 첨단정보통신교육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영학과 교수로서 이화여대 경영예술연구놀타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정보화전략` `신지식인`이 있다. 올해 말에 `경영예술, 철학과 방법론`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