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찰 가격을 사업 예정가격(예가) 절반에 가깝게 적어내는 출혈 경쟁에 통신장비 업계가 신음한다. 가격 하한선 없는 입찰제도가 중소기업 수익성 악화는 물론 국내 통신산업 경쟁력을 저해한다. 장비 업계 최소수익 보장을 위해 입찰가 하한선 도입을 비롯한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29일 180억원 규모 경기도 정보통신망 인프라 구축 사업에서 출혈경쟁 논란이 불거졌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1위 업체는 2위 업체보다 기술점수에서 1.2986점 뒤졌지만 가격 점수에서 1.3527점 앞서 총점 0.0541점 차이로 사업을 수주했다.
정보화사업은 기술점수 90%, 가격점수 10%를 반영해 총점을 내는 게 일반적이다. 비중이 적은 가격점수로 기술점수를 뒤집으려면 상당한 가격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기술점수 1.2986점 차이가 뒤집힌 건 1위 업체가 예가 60% 미만으로 가격을 적어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60%는 업계가 보는 적자 마지노선이다.
장비업체 관계자는 “사업 예가, 공개된 두 업체 기술점수와 가격 점수 등 총점, 2위 업체 투찰가 등을 고려해 역추산을 하면 1위 업체는 예가의 약 58% 수준 가격을 적어냈다”면서 “사업 수주를 위해 사업 가격의 절반에 가깝게 가격을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탈락 업체는 상실감이 크지만 사업을 수주한 업체도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행정자치부 예규인 `지방자치단체 입찰 낙찰자 결정기준`에 저가입찰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입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예규에는 60% 가격 하한선을 명시, 이하로 투찰하면 불이익(가격 점수를 배점의 30%만 부여)을 준다.
행자부 예규는 예가 60% 이하로 입찰을 하더라도 60%를 제시한 것으로 계산한다. 감점이 없다는 뜻이다. 248개에 달하는 지자체 공공사업에서 출혈경쟁이 지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신장비 업체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공산이 크다. 통신사업자와 팀을 꾸려 입찰하는 사례가 많은데 사업 수주 이후 통신사 마진을 빼면 장비업체는 적자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적자 사업은 저품질로 이어진다.
하지만 통신뿐만 아니라 지자체 입찰·계약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 다 적용되는 기준이라는 게 행자부 입장이다.
소프트웨어(SW)는 최저 입찰가를 예가 80%로 명시, 이하로 투찰하면 불이익을 준다. `맨먼스` 방식으로 인건비를 산정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위한 일정 가격은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통신장비 업계는 장비 개발에도 SW가 포함되며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최소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 투자 감소로 장비업체는 힘겨운 시기를 보낸다. 수익성이 악화되고 인력확보와 신기술 개발에 투자를 못하는 악순환이 연속된다. 불합리한 제도로 공공사업에서마저 수익을 내지 못하면 외산 장비와 경쟁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한편 사업 우선협상 과정에서 발주처가 통신장비를 교체하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1위 업체에 장비를 공급하는 다산네트웍스는 발주처가 장비의 외산 교체를 요구한다며 국산 장비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기재부와 행자부 계약예규 비교>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