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 9명이 국회 청문회에 선다. 온나라를 헤집어 놓은 `최순실 사건`이 대기업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미 검찰 압수수색에 주요 인사 검찰 출두를 겪은 기업들은 매년 해 오던 인사까지 미루고 내년도 사업 계획은 손조차 대지 못했다.
잘못은 고치고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법리 해석이나 적용에도 현실은 반영되고 여론이 참작된다. 결국 지금처럼 국내외 정치 상황과 경제 여건이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서 대기업을 궁지로 몰아 얻을 것이 뭔가를 냉정하게 짚어 봐야 한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제로(0) 또는 갈아엎자는 선택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대기업이 이번 정권 차원의 거대 의혹에 연루돼 있고 의혹이 커진 상태지만 그것을 확정된 `죗값` 또는 `단죄` 형태로 몰아가선 안 된다. 앞으로 국정조사와 특검 등을 통해 조사가 이뤄지고, 그 이후에도 법원 판단에 의해 죄가 가려질 것이다.
단지 `현재 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기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에 세우는 데에서 더 나아가 `죄를 물어야 한다`는 식의 여론재판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성난 민심이 거셀수록 더 냉정하고 철저한 절차를 밟아 책임을 따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 누구도 평안한 퇴임을 맞지 못했다. 이래저래 기업과 가족, 측근이 얽힌 비리와 탈법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와 기업 활동은 얽히고설켰다.
많은 사람이 이번 사태를 겪고 나면 한국 정치가 많이 성숙할 것으로 믿고 있다. 실제로 높아진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발전된 참여 태도·방식이 발현되고 있으며, 이는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를 형성했다.
나아가 정권에 묶여 대통령 임기 때마다 고초를 겪어야 하는 대기업의 역할과 존재 이유도 새롭게 정립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업을 자기 곳간인양 써 먹고 책임은 떠미는 정권 철학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시장과 소비자에게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