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회계시스템에 대한 선입관을 바꿔 보자

[전문가 기고]회계시스템에 대한 선입관을 바꿔 보자

이사를 하게 되면 당연히 이삿짐센터에 맡긴다. 상식이다. 1980년대까지는 손수 박스를 구하고 들기 편하도록 바리바리 짐을 꾸렸다. 이사를 시작해서 마치기까지 고된 노동이지만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었기에 온 가족이 달라붙어 짐을 쌌다. 요즘은 어떤가? 전화 한 통이면 이사짐 센터를 불러 견적을 받고, 계약하면 사실상 이사는 끝나는 셈이다. 세상 참 편해졌고, 많이 변했다.

회계(복식부기)는 400~500년쯤 전 이론으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주판으로 계산하던 것이 계산기로 바뀌고, 계산기가 엑셀로 바뀌는 동안에 회계 논리는 계속 유지돼 왔다. 이사하는 본질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회계의 본질도 변하지 않았다.

회계는 돈에 대한 기록이다. 은행에 들어 있는 죽은 돈은 한 줄의 숫자로 표시하면 그만이다. 회계는 살아 있는 돈, 입출금된 돈의 기록이다. 즉 완성된 입금과 출금의 기록인 것이고, 어떤 의미로 입금되고 출금된 것인지를 기록하는 일이 회계다. 또 한 가지는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기업의 입출금 기록을 기반으로 결산을 하고 이익이 얼마인지를 구분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그 결과 기업의 주주와 세무서에 그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대변화를 가져올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두 속성의 일을 하나의 틀로 풀어 내려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상법에서 법인의 경우 복식부기를 통한 장부를 5년 동안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회계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복식부기를 통한 장부를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일이다.

회계의 첫 번째 기능인 돈의 기록을 만들고 두 번째 기능인 결산하고 세무 상태를 보고한다. 매우 간결해 보이는 이 처리 프로세스 때문에 회계는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의 발전으로 아주 다양하고 편리한 회계 프로그램이 보급됐지만 분개하고 계정 처리하는 전반의 과정이 어려운 일이어서 결국 세무 신고를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당연히 전문가에게 일을 의뢰하는 것이 된 것이다. 맞는 구조다. 그러나 불행한 구조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세무 대리인에게 맡겨서 일을 처리하지만 돈의 입출금은 내 손에서 일어난다. 입출금 내역을 전달하고 나면 세무 대리인은 자신의 본연 업무인 세무 처리에 주안점을 두고 업무를 한다. 이에 따라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자금 집행을 위한 내 돈의 흐름은 자기 스스로가 어떻게든 정리하고 분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인 세무 대리인에게 어떤 프로그램을 쓰면 좋겠는가 하고 물으면 세무 전문가는 어차피 정리하고 서로 연계되니 내가 쓰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기술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고민하며,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상품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기업이 회계에 발목을 잡히는 순간이다. 세무 전문가가 쓰는 수준의 프로그램을 전문가가 전혀 아닌 기업에서 전문가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경험 있는 경리 사원을 뽑는다. 그런데 그 경리 사원이 퇴직하면 회계 처리는 멈춰 서고, 사장님의 한숨은 늘어 간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회계 첫 번째 기능. 돈의 기록에만 집중해 보자. 똘똘한 초등학생 정도면 부모가 준 용돈, 간식 사 먹은 돈, 학용품 산 돈, 기부한 돈 등을 똘망똘망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세무 전문가에게 주면 세무 전문가는 곧바로 결산해서 세무 보고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일단과 이단으로 구분해서 생각하자. 일단은 돈의 기록에만 집중하자. 그다음에 결산과 보고다. 이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서 처리하자. 이게 이단이다. 지금껏 해 온 방식대로 하면 된다.

회계 프로그램 개발자가 노력하는 분야는 아주 저렴한 금액으로 스스로 장부를 정리해서 세무 처리까지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금액이 적든 많던 세무 신고라고 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세무서에서 인정하는 간편 장부 사용 규모의 작은 기업에는 알맞은 방법이지만 이 일도 상당한 공부가 필요하다. 세법도 해마다 바뀌고, 스스로 처리하다가 잘못되면 과징금을 물 수도 있는 일이다. 전문가가 하는 게 맞다. 스스로 세무 신고가 가능한 사업자는 행복한 경우다. 대부분의 경우는 어렵기 마련이다.

정말로 쉬운 방법은 일단과 이단으로 나눠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된다. 일단은 돈의 기록이다. 엑셀을 쓰든 가계부를 쓰든 어떤 돈이 어떤 의미인지를 꼼꼼히 정리하면 된다. 법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단이다. 이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회계에 대한 생각, 회계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 세상이 쉽고 편해진다.

코코아 이근영 대표 wwwbomn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