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뿌리기업 육성으로 제조업 혁신의 꽃을 피우자

최수규 중기청 차장
최수규 중기청 차장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이 열린다는 뜻이다.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밑줄을 그으며 공부하던 `용비어천가`의 유명한 구절이다.

산업에서도 뿌리 역할을 하는 분야가 있다. 소재를 부품, 부품을 완제품으로 생산하는데 반드시 동반되는 주조, 금형, 용접, 소성 가공, 열처리, 표면 처리 같은 기초 공정 기술이 바로 `뿌리기술`이다.

수출 효자 품목인 자동차를 보자.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 가운데 뿌리기술 이용 부품이 부품 수 기준으로 90%, 무게로는 86%를 차지한다. 말한다면 제대로 된 뿌리기술 없이는 자동차 품질은 둘째 치고 아예 자동차 자체를 만들 수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모든 제조업의 기반이 되고 있는 뿌리산업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뿌리기업 2만6840개 가운데 99.6%는 중소기업, 뿌리산업 종사자 수는 51만명이다.

문제는 뿌리산업이 이른바 3D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젊은이들의 취업 기피 현상이 이뤄지고, 이로 인한 인력 부족 만성화와 뿌리산업 종사자 고령화 및 이를 메우기 위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증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뿌리산업 특성상 대기업 등 의존도가 높아 비용 절감의 압박에 상시 노출돼 있고, 이는 핵심 인력 확보와 새로운 기술 개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뿌리산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독일 등 뿌리산업 선진국의 약 70%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 조선, 정보기술(IT) 등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주력 산업의 지속 성장 및 혁신이 가능하려면 뿌리기술 고도화와 뿌리기업 육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소기업청은 핵심 뿌리기술을 보유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전문 뿌리기업으로 지정,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현재 496개에 불과한 전문 뿌리기업을 내년에는 1000개 규모로 대폭 확대하고 전문 뿌리기업 전용 연구개발(R&D) 자금 지원도 확대, 기술력 강화를 도울 계획이다.

특히 뿌리기업의 작업 환경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동화·첨단화 설비 구축, 공정 혁신 등도 꾸준히 지원할 예정이다.

뿌리기술은 몸으로 배우고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는 암묵지식(Tacit knowledge)에 속한다는 점에서 뿌리기술 전문가인 명장의 손끝 기술 전수와 이를 전수 받을 수 있는 인력 양성도 매우 중요하다.

뿌리산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 근로자와 미래의 뿌리기술 전문 인력이 될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명장이 체득한 살아 있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뿌리기업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또 뿌리기술의 맥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식 전환과 정부 지원 시책의 적극 활용도 필요하다. 기업과 근로자가 5년 동안 공동 기금을 조성하고 정부가 세제 혜택을 부여해 5년 후 근로자가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게 하는 `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지원 시책은 뿌리기업의 핵심 인력 확보 및 유지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등이 고착화되는 `뉴노멀`에 접어들면서 선진국들은 앞다퉈 제조업 혁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기술을 갖춘 뿌리기업 육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최수규 중소기업청 차장(sgchoi@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