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정부가 제시한 세계 7대 보건산업 강국 달성 가능성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해가 될 전망이다. 처음으로 마련한 종합발전전략이 궤도에 오르고 연구개발(R&D) 성과가 결실을 기다리는 시기다.
장밋빛 전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대전제가 있다. 보건산업 중심축인 `병원`이다. 병원 혁신 없이 보건산업 성공도 보장 못한다.

시장조사업체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에 따르면 우리나라 바이오헬스 산업 경쟁력은 세계 56개국 중 24위에 그친다. 2009년 15위에서 출발해 2012년 22위, 지난해 23위 등 매년 하락했다. 18개 신흥국 대상으로는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게 유일한 위안이다.
경쟁력 하락 원인은 사업화 실현 가능성과 환경에 있다. 정부와 민간 투자 의지, 지식재산권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 사업성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보건복지부 국가 R&D 연구생산성은 선진국과 비교해 낮다. 복지부 R&D 투자 대비 기술료 수치는 1.08%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부처평균(1.32%)보다 낮고, 미국(4.06%)과 비교해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바이오 분야에 매년 2조원이 넘는 R&D 예산을 투입하지만, 기술이전 등으로 인한 수입은 바닥이다.
창업도 내리막길이다.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바이오 분야 신설법인은 1999년 91개에서 2000년 224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2010년 52개, 2013년 2개로 크게 감소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020년까지 7대 보건산업 강국 구현을 목표로 `보건산업 종합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015년 9조원 규모 보건산업 수출 규모를 2020년까지 20조원으로 늘린다. 일자리는 2020년까지 94만명, 글로벌 신약 17개, 글로벌 50대 제약기업 2개 육성을 외쳤다.
정부 목표는 `병원 혁신` 없이 불가능하다. 64조원에 이르는 국내 의료산업은 병원이 42조3000억원으로 65.3%를 차지한다. 제약 15조6000억원(24.1%), 화장품 3조8000억원(5.8%), 의료장비 3조1000억원(4.8%)과 비교해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원천기술 확보, R&D, 사업화 등 바이오산업 가치사슬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매자인 동시에 공급자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병원은 산업적 역할에 취약하다. 각종 법·제도로 사업화 기회가 적은데다 의지도 부족하다. 보건산업백서에 따르면 병원이 연간 기술 이전한 사례는 144건 정도다. 전체 1.3%에 불과하다. 기술료 비중 역시 전체 2조849억원 중 1% 밖에 안된다. 기술개발, 창업 등으로 사업화 수익을 얻기보다 여전히 진료, 수술을 통한 수익이 절대적이다.
병원 주도 기술개발과 기술이전이 절실하다. 이 과정에서 창업을 유도하고, 기존 바이오기업과 연계한 사업화 모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보건산업 종합발전전략으로 제시한 신약개발, 의료기기 산업 고도화는 병원이 빠져서는 진행될 수 없다.
현대의학으로 일컫는 정밀·재생의료도 마찬가지다. 환자 정보에 기반한 정밀의학은 현행법상 의료정보를 취급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이뤄지는 게 가장 안전하다. 줄기세포도 인체자원 획득, 연구, 분석 전 과정에서 병원 참여가 필수다.
병원은 기술개발에서 한 단계 나아가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까지 해야 한다. 현재 국내 의사가 창업하거나 기업 경영에 참여한 사례는 40여 개에 불과하다. 현장이 필요한 요구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사가 제대로 된 경영 지원을 바탕으로 창업할 경우 성공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하지만 대학병원만 하더라도 밀려드는 외래진료와 수술, 교육 등 빡빡한 일정 때문에 창업은 엄두도 못낸다. 설령 창업을 한다 해도 투자, 경영, 마케팅 등 R&D 외적 지원이 열악하다.
병원 사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과 협업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공동연구나 기술이전을 통해 시장에 공동 진출에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병원 내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벤처 창업을 유도한다. 외부 사업전문팀이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업 등과 협업해 기술과 사업 간 다대일 매칭 프로그램도 효과적이다. 대학교 산학협력단, 기술지주회사 등으로 사업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서울바이오허브 등 인큐베이팅 클러스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차츰 만들어지는 병원 연계 벤처캐피탈 펀드로 투자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기술개발, 창업 등을 활성화하면 병원의 진료 중심 수익 구조는 연구중심으로 전환된다. 수익 다변화를 꾀할 수 있다. 기업은 병원이 가진 임상 샘플이나 인프라, 임상·중개연구로 실용화 가능한 프로젝트를 발굴한다. 민간 펀드는 병원과 기업 간 조정자 내지 네트워킹 역할을 해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병원-기업-펀드 공생 모델이 구축된다.

연구중심병원은 병원 체질개선을 위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병원 기술사업화 역량을 키워 수익 다변화를 꾀하는 게 목적이다. 실제 2013년 시행 후 2015년까지 연평균 73건에 기술이전을 성공했다. 2016년은 10월 기준 97건에 달했다. 기술이전 수입도 2013년에서 2015년 3년 평균 31억원을 거뒀다. 2016년은 55억원이다. 창업도 2013년 1건에서 지난해 8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2016년 기준 연구중심병원 사업 예산은 243억7500만원이다. 올해는 이보다 25억원 늘려 예산결산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작년만 해도 고대구로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은 지원받지 못했으며, 병원당 지원 금액도 수 십억원 수준이다.
임채승 고대구로병원 연구부원장은 “미래 바이오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개발, 사업화, 창업 등 산업 생태계 핵심인 병원이 변해야 한다”며 “병원 스스로 진료 중심에서 연구중심으로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관련 지원정책 강화, 법규제 개선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